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
2025년 8월 상법개정에 따라 최근 사업연도 말 자산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회사는 집중투표제가 의무가 됐다.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되며 시행 후 최초로 이사 선임을 위한 주주총회부터 적용된다.
집중투표제란 주주가 보유한 주식수에 선임할 이사수를 곱한 의결권을 특정 후보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소수주주가 이사 선임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기존에도 있었지만 정관으로 이를 배제할 수 있어 실효성이 거의 없었다. 2024년 기준 상장회사 334개사 중 13개사만이 정관으로 배제하지 않았고 실제로 집중투표제를 실시한 회사는 단 한 곳이었다.
상법개정은 이러한 현실에서 출발했다.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고 소수주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정관배제를 금지하고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 보유한 주주가 주주총회 6주 전 집중투표를 청구하면 회사는 반드시 이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감사위원회 강화가 병행됐다. 감사위원 중 2명은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선임해야 하며 독립이사제도와 이사의 충실의무 명문화가 함께 이뤄졌다. 이는 지배주주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벗어나 소수주주 보호와 이사회 견제기능 강화라는 목적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일부 대규모 상장회사는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앞두고 정관을 변경해 이사 정원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예를 들어 '3인 이상 10인 이하는 총 7인' '3인 이상 7인 이하는 총 7인' '3인 이상 5인 이하는 총 4인'과 같이 적은 인원으로 고정해 이사수 증원 가능성을 차단했다.
기업은 이사수 증가시 의사결정의 비효율 발생 가능성, 행동주의펀드 또는 단기 투자자들의 경영개입 우려, 시차임기제·위임장 경쟁과 함께 경영권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제시한다. 이사수를 줄이면 표가 분산되지 않고 지배주주 측이 선호하는 이사를 선임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배경이다.
그러나 이사수 축소라는 기업의 대응은 검토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재무·회계·법률·ESG·디지털 등 다양한 전문영역을 반영하기 어려워 이사회의 전문성과 다양성이 저해된다. 이사수가 지나치게 적으면 전문성 배분이 어렵고 위원회의 실질적 운영도 제약된다. 둘째, 이사회 내 견제와 균형기능이 약화한다. 셋째, 위기상황에서 의사결정에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이사 중 일부가 사임 또는 사고 등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정족수를 확보하지 못하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된다. 넷째, ESG 관점 및 기관투자자와 의결권 자문기관의 부정적 평가가 우려된다.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이사회의 다양성·독립성을 주요 평가항목으로 보는데 이사수를 줄이면 투자자 대응 리스크가 발생한다.
따라서 단순히 이사수를 줄이는 방식은 법 취지에 맞지 않고 기업가치에도 불리하다. 상법개정의 취지를 존중하고 회사의 규모와 사업 특성에 맞게 전문성·독립성·다양성을 갖춘 이사회 구성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정관에 이사수를 특정 숫자로 고정하기보다 최소-최대범위로 규정해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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