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잠 연료, 에너지 안보에 영향
장기적 '핵연료 내재화' 필요성
기술주권 단계적 확대 이뤄야
장기적 '핵연료 내재화' 필요성
기술주권 단계적 확대 이뤄야
항구에 정박한 핵 잠수함. 연합뉴스 |
최근 한국이 미국에 원자력 추진 잠수함 연료 공급을 요청했다. 이는 단순한 고성능 무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원자력 기술과 연료주기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느냐는, 자주 원자력 이슈와 관련이 깊다. 원자력 잠수함의 연료 확보는 우리의 과학 기술력과 에너지 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한국의 원자력은 외국 기술 도입에서 출발했다. 1956년 한미원자력협정을 통해 연구 인프라를 마련했고, 1962년에는 연구용 원자로가 처음 가동됐다. 이후 1970년대에 들어 미국·캐나다 기술을 도입해 상업용 원전을 건설했다. 1980~90년대에는 국내 기술진이 이들 기술을 융합·개량하여 자체 기술로 발전시켰다. 이를 통해 설계와 시공에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아직 핵연료의 농축과 재처리는 할 수 없다. 원전은 잘 만드는데, 연료를 생산·가공하는 일은 여전히 외부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2015년 개정된 한미원자력협정은 제도적 진전을 이뤘다. 그러나 핵심 연료를 직접 가공하거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권한이 부여된 것은 아니다. 한국은 원전의 설계와 건설은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지만, 연료의 생산과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과정에서는 미국의 승인과 국제 규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구조는 해외 원전 수출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우리가 설계한 원전을 제3국에 수출하려면 미국의 'Part 810' 수출통제를 통과해야 하며, 체코 원전 수주전에서 불거진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재권 분쟁도 제도적 종속성을 드러낸 사례였다. 제도적·외교적 문제를 풀지 못하면 발전소 수출은 쉽지 않다. 독자적인 SMR과 4세대 원자력 기술 개발 역시 고농축 연료 확보와 자체적인 연료 처리 기술이 없이는 여의치 않다.
진정한 원전 강국이 되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연료 공급과 처리를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 사례를 보자. 프랑스는 1970년대 에너지 위기 이후, 자체적인 '폐쇄형 연료주기'를 구축했다. 국영기업 오라노와 프라마톰은 우라늄 채굴·전환·농축·연료 제작·사용후핵연료 재처리·폐기 관리까지 모든 단계를 수행한다. 라아그 재처리 공장은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해 혼합산화물(MOX) 연료로 재활용하고, 이를 다시 발전용 원전에 투입한다. 독자적인 원자력 전주기 처리 능력은 프랑스의 에너지 안보와 외교적 자율성을 뒷받침하는 전략적 기반이다.
원자력 잠수함 연료 도입을 단순한 군사적 사안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원전의 핵연료 자립, 우라늄 정련·재처리·폐기 기술 발전으로 이어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내에 연료 기술 연구와 규제 기관,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국제 비확산 규범 속에서 자율적 연구와 상업화를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미국과의 협의 또한 일회적 허가에 머물 것이 아니라, 협정 개정과 기술 주권의 단계적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 일본도 1968년 미일 원자력 협정을 통해 재처리 권리를 확보하고 2012년부터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고 있다. 미국도 28년부터 러시아산 핵연료 수입을 중지하고 자국 공급망을 강화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에너지 공급권을 활용해 강대국들이 패권경쟁을 펼치는 상황에서 전력 수요의 30%를 대형 원전에 의지하는 우리나라 역시 장기적으로 핵연료 공급망 내재화와 자체 기술력 확보가 필요하다.
원자력 잠수함의 연료 한 알갱이는 단순한 군사 자원이 아니라, 기술 독립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이 진정한 원자력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원전을 짓는 나라'에서 '연료까지 통제하는 나라'로 나아가야 한다. 자주 원자력으로 우리의 취약한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면, 그 시작점이 될 원자력 잠수함의 가치는 몇 배 더 올라갈 것이다.
권효재 COR Energy Insight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