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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의 이제는 국가유산] [40] 세월의 풍파 이겨낸 덕수궁

조선일보 윤주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자연유산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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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에 가을빛이 가득하다. 궁 안부터 돌담길까지 관광객이 북적인다. 궁장(宮牆), 즉 궁의 담은 궁궐 경계를 구분하고 내·외부를 구분한다. 궁 담장이 이어진 길은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져 인기가 있다. 올해는 특히 외국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 한국의 가을 명소로 경복궁·덕수궁 돌담길이 소문난 듯하다.

이즈음에는 이문세가 부른 ‘광화문연가’가 떠오른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 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란 노랫말처럼 세월 따라 사라진 것도 있지만, 옛 흔적을 담은 돌담이 남아 역사를 품고 추억으로 이어진다.

덕수궁은 세월의 풍파 속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변화를 겪었다. 덕수궁 자리는 원래 성종의 형 월산대군 집이었다. 선조 때는 임진왜란 후 불타 없어진 궁궐 대신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삼았다. 광해군 때부터 경운궁으로 불리다 고종이 자리 잡은 후 궁궐다운 면모를 더했다.


그러다 1904년 대화재로 대부분 소실되고 1905년 11월에 을사늑약이 체결된다.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후에도 계속 머물다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뜻으로 ‘덕수궁’으로 개칭된다. 지금 수문장 교대식이 열리는 대한문(大漢門)은 이전에는 위치도 이름도 달랐다. 도로 앞 시청 방향 33m 되는 곳에 자리해 나라와 백성 모두 평안하다는 의미인 ‘대안문(大安門)’이었다. 1906년 궁 수리 후 한양(서울)이 창대하길 바라며 대한문으로 현판을 고쳐 달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도로가 뚫리며 덕수궁 동쪽 부분이 도로에 잠식당했다. 광복 후에도 또다시 태평로가 확장되며 대한문만 도로에 덩그러니 있기도 했다. 1960년대에 시청 쪽 담장을 철거하고 철책으로 대체했다가 논란 끝에 돌담으로 회복됐다. 그리고 도로에 섬처럼 있던 대한문이 지금 자리로 이설되었다. 노랫말처럼 세월 따라 변해 사라진 것도, 여전히 남은 정취도 있다. 그 길에 배인 역사의 숨결과 마음을 추스르며 걷던 기억조차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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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자연유산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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