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이 국가자산인 시대
전세계가 산업정책에 올인
한국엔 콘트롤타워가 없다
부처는 분절화, 정책은 파편화
전세계가 산업정책에 올인
한국엔 콘트롤타워가 없다
부처는 분절화, 정책은 파편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오른쪽)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참석 직전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
경주선언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의 뼈대가 되는 자유무역이 빠진 건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극혐하는 단어인지라 심기 경호가 필요했나 보다. 자유무역의 상징인 세계무역기구(WTO)를 형해화시킨 장본인도 그였다. 명시적으로 WTO 규정을 위반해도 손을 못 쓰게 했다. 6년 전 일이다.
중국과의 패권전쟁이 시작되면서 그랬다. 시장 봉쇄는 내로남불이고 외국기업 차별은 다반사였다. 자국 산업을 키우기 위해 보조금을 퍼붓기 시작하더니 관세 전쟁까지 치달았다. 각자도생의 길. 제조업 주권(Sovereign Manufacturing)에서 애국적 투자(Patriotic Investment)로 발전했다. 부족한 인프라나 전략산업에 정부가 재정을 넣거나 기업들 돈을 태우게 했다. 냉정히 말하면 한국과 일본은 이렇게 팔을 비틀린 것이다. 국가가 민간기업의 대변인이라도 된 듯 발 벗고 나선다.
미국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중심이다. 통상을 담당하는 무역대표부(USTR)를 휘하에 뒀다. 물론 트럼프가 전권을 준 것이지만. 이번 한미 관세협상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가 초창기 협상 때 엄한 데 두드린 한국 대표단에게 한 말이 “나에게 말하라(Talk to Me)”였다. 우리가 대미투자 자금으로 약속한 2000억 달러를 운용할 책임자도 러트닉이다.
중국은 말할 나위조차 없다. 2015년에 시작해 올해 마무리한 ‘제조업 2025’가 핵심이다. 10년간 제조업을 전략자산으로 키워 세계를 호령한다. 대한민국이 중국을 앞섰다고 자부하는 건 이제 메모리반도체 정도. 그것도 추월은 시간 문제. 지난달 있었던 중국 공산당 4중전회에서 ‘신질(新質)경쟁력’이란 개념을 들고 나왔다. 말 그대로 새로운 품질의 산업경쟁력. 파고 들어가면 인공지능(AI)을 전 사회에 파급시킨다는 것. 그게 향후 10년간 중국의 국가전략이다.
일본도 움직였다. 지난주 ‘일본 성장전략본부’가 출범했다. 중점 투자해야 할 17개 전략 분야를 정해 분야별 장관을 임명했다. AI, 반도체, 바이오, 조선, 방산 같은 것들이다. 다카이치 사니에 총리가 직접 본부장을 맡았다. 일본은 이미 시스템 경쟁력 면에서 한국을 앞질렀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가 착공되기까지는 6년이 걸렸는데 구마모토현 TSMC 반도체 공장은 2년 2개월 만에 준공식을 가졌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답답하다. 관련 정부 부처는 분절돼 있고 산업정책 수단은 파편화됐다. 제조업을 지원하면서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건 산업통상부, 중소벤처기업 육성은 중기벤처부. IT 업종 및 AI 산업을 지원하는 건 과기정통부 몫이다. 산업 육성 담당 부처도 산재돼 있다. 물류는 국토부, 바이오는 복지부, 방산은 방사청, 식품은 농식품부다. 그런가 하면 규제개혁은 국무조정실이, 금융지원은 금융위원회가. 예산 및 세제는 기획재정부가, 에너지정책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인력공급은 고용노동부가 한다.
그러면 모든 부처를 하나로 합치라는 말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논지 이탈이다. 실질적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 이제 산업 그 자체가 글로벌 전략자산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고 미국은 첨단 AI칩이 있다. 대한민국이 반도체나 조선 없이 미국과 협상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마 “당신에겐 카드가 없어”란 말이 트럼프 입에서 나왔을지 모른다. 산업이 국가전략자산이라면 ‘팀코리아’로 플레이해야 한다. 어느 한 부처가 ‘내 영역’이라고 주장할 일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 회의는 변죽만 울릴 뿐이다.
일본처럼 대통령이 직접 산업전략 본부장을 맡든 산업을 전담하는 부총리를 두든, “한국의 산업 문제는 나에게 말하라”고 자신하는 해결사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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