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
남편이 옆집 아저씨의 농사가 부러웠는지, 올해는 고추·오이·깻잎·상추를 작은 텃밭에 심자고 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엔 배추 모종을 사와 심었다. 간간이 옆집 아저씨에게 농사를 배우는 눈치였다. 새벽에 달팽이를 잡아주어야 한다는 말에 날도 밝기 전 집을 나설 정도였다. 그렇게 키운 배추가 제법 커져 어제는 두 포기를 수확했다. 집으로 가져와 씻어서 겉절이도 하고, 쌈으로 먹었는데, 맛이 확실히 달랐다. 촉감은 더 거친데 맛이 너무 고소해 깜짝 놀랄 정도였다.
문득 정원공부를 위해 떠났던 7년간의 영국 유학 시절이 떠올랐다. 유학생들에게 금쪽처럼 귀한 음식이 김치다. 그때는 그저 배추에 액젓과 고춧가루만 버무리면 다른 반찬 없이도 충분했다. 초록보다 흰색 부분이 많아서 ‘백색 채소’로도 불리는 배추는 자생지가 중국과 시베리아 남쪽이다. 그래서 배추는 차가운 날씨를 더 좋아한다. 여름 끝자락에 심어 가을에 재배하는 특징 때문에 김장도 가능한 셈이다.
지금 우리가 먹는 잎사귀가 포개지는 배추는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재배됐다. 맛도 더 고소해지고, 수분도 많아졌지만, 그 탓에 벌레들의 표적이 된다. 약을 치는 것도 방법이지만 매일 들여다보며 벌레를 잡아주는 게 제일 좋다. 맛난 배추를 먹으려면 정성이 필요한 셈이다. 기상이변으로 수년 전부터 배추의 수확량은 크게 줄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배추 한 포기의 행복을 후손들도 즐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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