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돌까?”
―윤가은 ‘세계의 주인’
때론 영화의 한 장면이 모든 걸 납득시키는 경이로운 순간이 있다. 최근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세계의 주인’에 등장하는 세차장 장면이 그렇다. 너무나 명랑한 고등학생 이주인(서수빈 역)이 세차장 차 안에서 엄마에게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들을 폭발시키는 장면이다. 늘 밝은 모습이던 주인이 그렇게 감정을 쏟아내자 비로소 평소에 밝은 모습에 담긴 치열함이 모습을 드러낸다.
주인은 어린 시절 성폭행 피해의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주인은 그것을 ‘평생 지워지지 않는 고통’으로 안고 가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 여기지 않는다. 물론 그건 지워지기 어려운 상처지만, 그래도 그 상처에 매몰되어 세상과 유리된 채 살아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딪치고 깨지더라도 세상 속에서 살아내고 싶어 한다.
세상은 피해자들에게 이른바 ‘피해자다움’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그래서 밝은 모습을 보이면 그것이 밝게 살아가려는 의지라는 걸 읽지 못하고 ‘과연 피해자가 맞는가’ 하는 의구심으로 2차 가해를 가한다. ‘뭐가 진짜 너야?’ ‘너는 정말로 괜찮아?’ 같은 질문은 또 다른 비수가 되어 피해자들을 찌른다. 진짜 피해자가 아니라면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도 또 공감하기도 어렵지만, 마치 아는 듯이 말하고 배려한다는 듯이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피해자를 생각하는 행동일까.
차 외형이 일견 깨끗해진 듯 보여도 내부는 변한 게 없는 세차처럼, 어떤 피해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다. 그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건 그래서 질문이 아니라 경청이 아닐까. 세차장 차 안에서 주인이 그 감정들을 폭발할 때, 아무 말 없이 그 이야기를 오롯이 들어준 엄마가 주인에게 묻는다. “한 번 더 돌까?” 세상이 경청할 때 비로소 피해자들은 생존해 나갈 힘을 얻을 게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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