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 청년창업컨설턴트 |
인생은 나만의 집을 짓는 과정이다. 내 집의 초석은 시장통에 있다. 어머니는 대학교수 남편을 두고도 부산 동래시장 귀퉁이에서 청국장을 팔았다. 대쪽 같은 아버지가 자주 시국 사건에 연루됐기에 생계는 어머니의 몫이었다. 나는 장사하느라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수금을 다녔다. 빌려줄 땐 서서, 받을 땐 엎드려서라고 했던가. 수금날만 되면 돈 받기 전쟁이 한판 벌어졌다. 그때 시장에서 갈고닦은 흥정과 말재주가 내 평생의 밑천이 됐다.
관광경영학과를 간 것도 이 때문이었다. 사람 대하는 게 몸에 배어 있었기에 가장 자신도 있었다.
첫 직업은 호텔 웨이터, 대졸 1호였다. 졸업반 때 서울시내 특급 호텔에 이력서를 내니 대졸자를 뽑은 전례가 없다며 번번이 반려됐다. 더러는 노조 만들러 왔냐고 눈총까지 줬다. "관광산업을 책임질 전공을 대학에 만들어놓고 일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분한 마음에 무작정 한국관광공사에 가서 따졌다. 그 말을 들은 임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싶었는지 허허 웃으며 추천서를 써줬다. 그렇게 하얏트 호텔 웨이터로 출근하게 됐다.
석사 1호 웨이터이기도 했다. 낮엔 손님을 모시고, 밤엔 경기대 야간 대학원에 다녔다. 88올림픽 때 호텔에 든 도둑을 잡고 보니 미국인 금메달리스트였다. 이 사연이 신문에 소개되자 현대그룹에서 연락이 왔다. 웨이터로 일을 시작한 지 3년여 만에 경주 현대호텔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그 후로 삼성 에버랜드, LF그룹 리조트사업부 등에서 굵직한 프로젝트도 맡았다.
나는 청국장집 아들이자 웨이터부터 시작한 관광맨이다. 오직 관광만 생각하며 차곡차곡 벽돌을 쌓아 올렸다. 박사 학위도 세종대 호텔경영학과에서 땄고, 겸임교수로 관광학부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렇게 40년간 지은 나만의 '인생 집'이 웨이터에서 CEO까지 오를 수 있는 경쟁력이었다.
얼마 전 대기업 건설회사 CEO를 만났더니 건축학과 학생들이 요새는 전부 펀드매니저를 지망한다며 걱정이라고 했다. 이공계 수재들은 의대에 가고, 인문계 대학생들이 로스쿨로 몰려드는 건 오래된 일이다. 요즘 청년들을 보면 '덜 힘든 길'을 찾느라 정작 '자신의 길'은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모두가 완벽한 설계도를 찾아 헤맨다. 지으면서 고쳐나갈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나는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돈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뭘 해야 돈을 벌까'보다 '뭘 해야 평생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했으면 한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지가 내 미래를 만든다. 남들 보기에 좋은 경로로만 가려고 하면 그건 '남이 지어둔 집'에 세 들어 사는 것에 불과하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로 나만의 '인생 집'을 꾸며야 한다.
용기를 주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결코 어렵지 않다. 청국장집 아들이기에 깨우쳤던 벽돌 한 장, 대졸 출신이지만 웨이터부터 경험한 벽돌 한 장, 잠을 쪼개가며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던 벽돌 한 장…. 그렇게 차근차근 모여 어느새 근사한 집이 완성된다. 청년들도 지금 손에 쥐고 있는 벽돌부터 한 장 한 장 쌓아 올려가길 바란다.
[이준혁 청년창업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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