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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 외규장각 의궤, 번역에 184년 걸린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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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145년만의 귀환을 기념, 지난 2011년 열린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 한국일보 자료사진

145년만의 귀환을 기념, 지난 2011년 열린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립중앙박물관의 연간 관람객이 500만 명을 돌파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에 힘입어 ‘뮷즈’의 판매량은 나날이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달 열린 ‘분장대회’ 이벤트의 호응도 뜨거웠다. 박물관의 인기는 국정감사에서도 화제였다. 박물관측은 운영과 관리 부담으로 유료화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전시의 흥행에 가려져 있지만, 박물관의 기능은 전시만이 아니다. 수집 및 구입을 통한 소장품 확보, 유물의 원형을 복원하고 손상을 방지하기 위한 보존 처리, 유물의 조사와 연구, 교육 프로그램 운영이 모두 박물관의 기능이다. 하지만 유물 구입과 보존, 연구를 위한 예산은 제자리걸음이다. 부족한 예산 탓에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145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도 그중 하나다.

외규장각 의궤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에 약탈당했다. 이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방치되어 있다가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돌아왔다. 환수한 의궤의 수량은 186종 294책, 대부분 국왕이 보기 위한 ‘어람용’으로 귀중한 자료이다. 박물관은 기초 조사를 진행하고 작년부터 별도 전시실을 마련해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의궤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한문 원문을 현대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더디다. 겨우 작년에 번역을 시작했다. 작년에 ‘별삼방의궤’ 4책, 올해 ‘분무녹훈도감의궤’ 2책의 번역을 마쳤다. 1년에 1종씩이다. 이 속도면 번역을 마치기까지 184년이 걸린다. 환수에 걸린 기간보다 오래 걸린다.

의궤와 같은 고문헌의 번역은 접근성과 활용도를 높이는 지름길이다. 번역이 없으면 의궤는 한낱 그림책에 불과하다. 국력을 기울여 외규장각 의궤를 환수받은 목적이 오로지 전시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관람객 규모가 루브르 박물관에 이어 세계 다섯 번째라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쟁상대는 루브르 박물관만이 아니다. 중국은 박물관 강국을 목표로 전국 박물관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국가급 박물관은 말할 것도 없고, 성급 박물관의 규모가 이미 국립중앙박물관을 능가한다. 중국이 AI 기술만 앞서는 게 아니다.

박물관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세계 각국이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과시하기 위해 박물관에 투자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중국의 박물관이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바탕으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예속시키려고 시도하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중국과 맞물리는 부분이 적지 않은 탓이다. 우리의 독자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박물관에 대한 투자가 시급하다. 유물의 보존과 연구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다채롭고 수준 높은 전시를 가능케 하여 박물관의 흥행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장유승

장유승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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