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왼쪽에서 둘째) 일본 총리가 지난달 28일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미군 기지에 정박 중인 미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함 갑판에 올라 군 관계자와 악수하는 장면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다. 다카이치는 이날 “평화는 말이 아닌, 확고한 결의와 행동에 의해서만 지켜진다”고 했다./AP 연합뉴스 |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미국·중국 간 무력 충돌을 상정한 대만 유사(有事, 전쟁 등 비상사태)를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로 본다”고 했다. 일본 자위대가 대만을 침공한 중국군에 대항해 미군과 함께 무력 행사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로, 일본 현역 총리가 대만 사태의 무력 개입 가능성을 공식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대만 유사시 한국군의 개입은 물론이고 주한미군의 적극적인 역할에도 부정적인 우리 정부와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9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7일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 유사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전함(戰艦)을 사용하고, 무력 행사도 있다면 어떻게 봐도 존립 위기 사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민간 선박이 늘어서서 (배가) 지나가기 어려운 것은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하지 않겠지만, 전쟁 상황에서 해상이 봉쇄되고 드론이 날아다닌다면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다카이치, 前총리들과 달리 ‘자위대 무력행사 가능’ 공식화
‘존립 위기 사태’는 일본이 직접 군사 공격을 받는 ‘무력공격 사태’와 다른 개념으로 2015년 제정된 안보 관련법에서 처음 제시됐다. 일본과 밀접한 타국이 무력 공격을 받은 영향으로 일본 영토나 국민 생명에도 명백한 위험이 될 경우, 정부는 이에 대해 존립 위기 사태 여부를 판단, 집단적 자위권이란 명분으로 무력 행사에 나설 수 있다.
그래픽=양인성 |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는 일본 존립 위기 사태’ 발언은 정부 내부에서 조율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은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기존 정부의 견해를 넘어선 것”이라며 “외무성에서도 총리 개인의 생각이라는 의견을 내놨다”고 전했다. 이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어떤 사태가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하는가는 정부가 모든 정보를 종합해 판단하는 것이며, 총리의 발언도 이런 취지”라고 말했다.
과거 일본 정부는 내부적으로 대만이 공격받을 경우 존립 위기 사태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해 왔지만, 공식적으로는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현직 총리가 중국을 상대로 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은 외교적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아소 다로 전 총리도 퇴임한 이후에는 ‘대만 유사는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지만, 총리 재임 때는 명확한 입장 표명을 피해왔다.
이 때문에 다카이치가 극히 민감한 발언을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한 배경에는 그의 친(親)대만 성향뿐 아니라 확실한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의 안보와 경제 번영에는 중국과는 분리된 대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진 일본 강경 보수의 입장을 다카이치 총리가 정부 공식 입장으로 관철하려 한다는 것이다.
다카이치는 총리가 되기 전에도 기자회견에서 “대만의 유사는 일본의 유사임에 틀림없다”라며 “(대만과 일본 영토) 요나구니섬과의 거리는 110㎞이니, 도쿄라면 (인근 도시인) 아타미시(市) 정도에서 타국의 전함이 전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눈앞에서 벌어질지 모르는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일본의 무력 개입론은 그의 지론인 셈이다.
대만이 중국에 넘어가면 일본 자위대는 오키나와현에 주둔한 주일 미군과 함께 중국군과 직접 대치하는 형국이 된다. 여기에 일본으로 들어오는 중동의 원유 대부분은 대만 인근 해역을 통과한다. 해외 교역량의 절반 이상이 같은 루트를 이용한다. 중국의 대만 봉쇄는 일본의 경제 동맥을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다카이치의 인식이라는 것이다.
대만 유사시 동맹국의 적극적 개입을 원하는 트럼프 미 행정부에 ‘코드’를 맞추는 성격도 있다. 다카이치는 실제로 정권을 잡자마자, 트럼프가 바라는 방위비 증액을 곧바로 추진했다. 2027년 목표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2%로 방위비 증액’을 연내 달성키로 했고 추가 증액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차세대 동력을 활용한 잠수함의 보유’를 연립정권의 정책 합의서에 명기해 사실상 원자력 추진 잠수함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일본 내에서는 다카이치의 강경 노선이 실제 외교·군사적 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의회에서 다카이치에게 관련 질문을 했던 입헌민주당 오카다 가쓰야 의원은 “무력 행사를 가볍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일본과는 반대로 한국 정부는 대만 유사시 한국군의 개입에 부정적인 것은 물론, 주한 미군의 적극적 역할에도 신중한 입장이다. 한국군이나 주한 미군은 한반도 방어에 집중해야 하며, 한국의 동의 없이 주한 미군이 대만 긴급 사태에 개입해 한국이 미·중 충돌에 끌려 들어가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는 취지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8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한미 상호 방위 조약에 보면 주한 미군은 한반도 방어에 주 목적을 갖고 있다”며 “그것은 양자 관계지 제3(국)에 개입하는 그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8월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미국은 한국이 일본처럼 대만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길 바라는 입장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전쟁부) 장관은 지난 4일 서울에서 한미 안보협의회의를 가진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역내 다른 비상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 제고가 의심 없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한 미군이 대만 유사시엔 참전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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