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5.9 °
경향신문 언론사 이미지

[詩想과 세상]서로

경향신문
원문보기
댓글 이동 버튼0

버스 창가에 앉은 어린 딸이
내게 기댄 채 잠들었다
저를 모두 올려놓고
돌처럼 고요한 아이

버스는 정체되고
나는 새잎을 올려둔 고목같이
경건해진다

우리가 겹치기까지
멀고 먼 시간을 생각하면
서로의 무게를 지탱하느라
우린 잠깐
이토록 눈부시다

김일영(1970~)

아이가 시인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다. “저를 모두 올려놓고” 고요히 잠든 아이의 무게는 한없이 가볍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지구가 달그락거리는 것 같다. 버스가 정체될 때마다, 지구가 마른기침을 하는 것 같다. 아이는 “새잎”처럼 가볍고, 시인은 그 “새잎을 올려둔 고목”처럼 경건하다. 아이가 어깨를 기댄 고목에는 어느새 새싹이 터져 나오고, 잎사귀들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서로’는 ‘우리’라는 단어를 품고 있다. ‘서로’는 분리가 아닌 연결과 상호 주고받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존재와 한 존재의 관계는 서로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 모든 관계의 시작인 ‘우리’는 ‘서로’가 포개지고 겹친 사이, 어깨를 내어주는 사이다.

어쩌다가 시인과 아이는 그 “멀고 먼 시간”을 돌고 돌아 이렇게 겹치게 되었을까. 서로의 무게에 기댄 순간, 둘이면서 하나의 존재로 겹쳐진 순간, 온 세계가 눈부시다.

이설야 시인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박나래 활동 중단
    박나래 활동 중단
  2. 2손흥민 협박 징역
    손흥민 협박 징역
  3. 3정관장 인쿠시
    정관장 인쿠시
  4. 4살라 리버풀 결별
    살라 리버풀 결별
  5. 5제프 켄트 명예의 전당
    제프 켄트 명예의 전당

경향신문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