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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가 숫자에 매몰될 때 [윤지로의 인류세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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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발표한 지난 6일 국회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이 개최한 시민집중행동에서 참석자들이 탄소 감축률 65% 수준 설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발표한 지난 6일 국회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이 개최한 시민집중행동에서 참석자들이 탄소 감축률 65% 수준 설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지로 | 클리프(Climate in Fact) 대표





10, 30, 48, 53, 61, 65



숫자는 강하다. 10주년, 20주년, 100주년을 기리고, 학생은 성적으로, 기업은 매출로, 정부는 지지율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숫자는 유용한 도구다. 본질을 담을 때 한해서 그렇다.



10일부터 브라질 벨렝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열린다. ‘각국 대표단이 매년 2주간 한자리에 모인다’는 형식만 봐도 의미가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지만, ‘흥행’은 기대에 못 미치는 편이다.



지난해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제29차 기후총회는 특히나 그랬는데, 그때는 다들 “내년 브라질 총회는 다를 것”이라고 했다. 2025년은 1995년 첫 기후총회가 열린 지 꼭 30년 되는 해인 데다 새 기후변화협정(파리협정) 체결 10년이 겹치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총회가 목전에 와도 10주년, 30주년이라는 문구가 무색한 분위기다. 총회에 참석하는 정상들 숫자도 흥행에 실패한 작년(약 80명)보다 적은 70명 밑으로 예상된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선진국이 주도했던 ‘감축 선언’에서 개도국이 주도하는 ‘재원 마련’으로 논의의 축이 이동한 걸 무시할 수 없다. 책임은 적고 피해는 큰 개도국에 힘을 보태는 건 당연하지만, 썩 달가운 주제는 아니다. 따지고 보면 기후위기를 강조하는 다양한 서사는 벌써 진부해졌고, 1.5도라는 목표도 구심력을 잃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글로벌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기면서 ‘이제 실패를 인정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니 먼저 나서서 지갑을 열 필요가 있겠는가. 미국도 빠진 마당에. 기후협상의 토대는 자국 우선주의에 흔들리고, 그 유약한 토대 위에 맞은 10주년, 30주년의 상징성도 힘을 잃었다. 숫자를 위한 숫자는 공허하다.



지난 6일 정부는 2018년 대비 ‘50~60%’ 또는 ‘53~60%’ 줄이는 2035 온실가스 감축안을 발표했다. 9일엔 당정이 인심 좋게 상한을 61%로 올리는 데 의견을 모았다. 도대체 저 숫자는 어떤 가치를 담고 있는가. 앞서 정부는 48%, 53%, 61%, 65% 네가지 감축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공청회에서 ‘전 국민이 지혜를 모아 과학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중요한 걸 빠뜨렸다. 숫자에 담긴 가치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 물음은 “‘과학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는 ‘가치’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가”로 치환할 수 있다.



2023년 유럽기후변화과학자문위원회는 프란스 티메르만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냈다. 15명의 과학자가 작성한 글에는 ‘과학적’(45번)이라는 말보다 ‘가치’(47번)가 더 많이 등장한다. ‘2040 감축 목표를 마련하면서 가치 판단의 사용을 인정하고, 이를 공개해야 한다’, ‘기후목표 설정에서 가치 판단은 불가피한 요소이다’, ‘탄소중립 경로의 실행 가능성을 평가할 때 가치 판단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가치중립이란 단어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과학적이라고 믿는 시나리오 역시 암묵적이고 규범적인 가정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비용편익이 우선인가, 형평성이 중요한가, 기술인가 가능성인가에 대한 판단이 배제된 시나리오는 있을 수 없다. 48, 53, 61, 65 중 하나를 고른다는 건 우리 사회가 지향할 가치를 고르는 행위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 지혜를 모은다면서 전문가들만 토론 석상에 앉혔다. 기망이다. 전문가 이야기만 들려줄 거였으면, 정부가 먼저 안을 정하고 일곱번에 걸쳐 국민을 설득했어야 한다. 정부가 고른 숫자가 일자리와 평등, 세대 정의, 기후 회복성, 비용과 편익 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했다.



저 숫자는 우리의 목표가 돼버렸다. 숫자는 강하다. 그러나 가치가 빠진 숫자는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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