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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기 힘든 상황이 찾아왔을 때… 의연하게 맞서라, 그 아픔은 성장통이 된다”

조선일보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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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안광복의 주말의 철학]
철학자 키케로가 들려주는
고통을 극복하고 이기는 법
로마의 정치가이자 법률가, 철학자였던 키케로의 말년은 신산스러웠다. 그는 최고 관직인 집정관까지 지낸 사람이다. 하지만 황제로 떠오르던 카이사르의 반대편에 섰다가 정치적 생명이 끝나고 말았다. 게다가 사랑하는 딸 율리아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61세 때 일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고 마음 둘 곳도 없는 상황, 그래도 장년의 사내는 담담하기만 했다. 그는 친구 아티쿠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나 역시 슬픔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위로도 지금의 고통에는 소용이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누구도 하지 않은 방식으로 내 아픔을 이겨내려 합니다. 집필로 나 자신을 다독이는 것이지요. 분명, 책 쓰기보다 좋은 위안은 없습니다.” 키케로의 ‘투스쿨룸 대화’는 이런 사연을 안고 태어난 책이다. 이 책에는 전성기 로마의 지도층이 품었던 고통 극복의 철학이 오롯하게 담겨 있다.

먼저 그는 로마 군단병을 예로 든다. 로마의 병사들은 반달 치가 넘는 식량을 이고 긴 행군을 견뎌야 했다. 여기다 방책용 목재까지 날라야 한다. 전투 대형을 짜는 훈련도 무척 고되었다. 하지만 이런 힘든 과정은 결국 병사들에게 도움이 된다. “신병과 베테랑 병사의 차이가 왜 그렇게 크겠습니까? 고생에 의연하고 공포를 이겨내며 상처를 가볍게 이겨내는 자세는 경험을 통해 길러집니다. 노련한 병사도 해낸 일을 학식을 갖춘 현명한 사람이 못할 까닭은 없습니다.” 키케로의 말이다.

한마디로, 강하고 튼튼한 정신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마음을 훈련하라는 뜻이다. 어떤 고통도 의연하게 이겨 나가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여전히 의문이 뭉글거릴지도 모르겠다. 정말 열심히 단련하기만 하면 아픔을 이겨 내게 될까? 일상에는 아무리 애써도 스러지지 않는 고통과 슬픔이 너무도 많지 않은가. 그래서 키케로는 농사에 빗대어 다시 설명한다. 기름진 땅을 공들여 가꾼다고 꼭 곡식과 열매를 거두리라는 법은 없다. 홍수나 가뭄이 오면 한껏 지은 농사를 망치기도 한다. 그래도 일단 땅을 가꾸고 작물을 일궈야 한다. 농지를 그냥 내버려 둔다면 절대 튼실한 결실을 얻지 못하는 까닭이다.

우리 영혼을 기름진 밭이라 생각해 보라. 슬픔과 괴로움, 공포와 두려움 같은 나쁜 감정은 잡초처럼 언제나 마음에 퍼져 나간다. 계속해서 이를 뿌리째 뽑아내야 한다. 그리고 씨를 뿌리고 가꾸듯 선하고 아름다운 감정과 태도가 자리 잡도록 애써야 한다. 고통은 분명 악이다. 그러나 이를 슬기롭게 이겨 낼 때, 아픔은 성장통으로 바뀌며 나의 삶은 더 고결하고 아름답게 자라난다. 그러니 고통을 애써 외면하고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의연하고 당당하게, “몸을 꼿꼿이 세워서 자신을 일깨우고 준비시키며 단단히 무장하여 적에게 맞서듯 고통에 대항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스로를 단련시켜야 할까?

검투사들은 로마에서 신분이 높은 자들이 아니었다. 키케로에 따르면, 그들의 운명은 기구했다. 그런데도 싸움에 의연했고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쓰러져서 칼에 맞아 죽으라는 명령에도 몸을 움츠리지 않았다. 아픔과 두려움을 이겨 내고 훌륭한 검투사가 마땅히 해야 할 바대로 보이려 애썼다. 마찬가지로 권투 선수들도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통증을 묵묵히 견딘다. 이런 태도를 겁에 질려 살려 달라 애원하는 검투사, 아프다고 대굴대굴 바닥을 굴러다니는 권투 선수의 모습과 견주어 보라. 키케로는 고통보다 수치가 더 괴롭고 아프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대가 자유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키케로는 계속해서 충고한다.


“차분하고 묵묵히 고통에 맞서기 위해서는 나의 행위가 얼마나 훌륭할지를 온 정신을 다하여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고결함과 훌륭함을 영혼이 절절하게 열망할 때, 전쟁터에서 위험도 기꺼이 무릅쓰게 됩니다. 용감한 자들은 상처의 아픔을 느끼지 않으며, 느끼더라도 고결함에서 조금이라도 내려오기보다는 차라리 파멸을 택합니다. 이런 자세가 바로 위안이며 극심한 고통을 다스리는 진통제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견디기 힘든 아픔에 맞서야 할까? 키케로는 습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사냥꾼들은 눈 덮인 산속에서 밤을 보내곤 한다. 스파르타의 젊은이들은 가혹한 처지에 거듭 던져지곤 했다. 고생에 익숙해진 몸과 영혼은 고통을 가볍게 여기고 더 쉽게 이겨 내는 덕분이다. 그러니 “추하지 않게 조심하라. 기죽지 말라. 당당하게 처신하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늘 의연하고 담대하도록 애써야 한다.

안타깝게도, 극기와 인내는 점점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 가는 덕목이 되어 버렸다. 이제 이 말들은 가혹함과 학대처럼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역경을 넘지 않고 절로 위대해지는 영혼은 없다. 편안함은 당장의 안락을 안길지라도, 고통에 견디게끔 내 영혼을 튼실하게 가꾸어 주지는 못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다. 그러나 안온함에 익숙해진 나약한 문명은 이내 스러졌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로마 전성기의 철학자 키케로의 ‘투스쿨룸 대화’를 살피며 마음을 다잡을 일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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