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9세기 ‘호작도’. 작자 미상. 종이에 수묵담채, 91.7×54.8㎝. 까치호랑이 민화의 대표작으로 일명 ‘피카소 호랑이’라 불린다. 리움미술관에서는 이달 30일까지 '까치 호랑이' 관련 작품 7점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리움미술관 |
어릴 적 방학 때 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호랑이가 허리를 쭉 펴고 두 발을 들어 포효하는 한반도 전도가 벽에 걸려 있었다. 나는 팔베개하고 드러누워 그 압도적인 호랑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이 땅에는 저 멋있는 동물의 기백이 한 몸처럼 흐르고 있구나. 그 등에 올라타 백두대간을 시원하게 달리고 싶었다. 요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K팝 데몬 헌터스’의 호랑이 더피가 태평양 건너 세계를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기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한국 호랑이 기상이 어디까지 뻗어갈지 기대 반 걱정 반인 마음. 다들 그런 생각, 갖고 있지 않을까.
어제는 현대 호랑이의 원류인 조선 시대 범이 보고 싶어서 이태원 언덕을 올랐다. 리움미술관 ‘까치호랑이’전에는 무시무시한 호랑이, 익살스러운 호랑이, 세상이 자못 궁금한 호랑이, 심술궂은 탐관오리 호랑이 등 온갖 범이 모여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1592년 작 호작도(虎鵲圖)다. 세로로 긴 화폭 중앙에 떡 버티고 선 호랑이는 고개를 살짝 틀어 왕방울만 한 눈을 치켜뜨며 상대의 속마음을 떠보는 듯하다. 잘 보니 꽁무니에 얼굴만 빼꼼 내민 새끼 호랑이가 있다. 새끼를 지키려고 경계하는 어미로구나. 어린 호랑이는 깍깍대는 까치들이 신기해 철모르고 나무 위만 올려다본다.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어우러져 정감 가는 그림이다. 이빨은 드러내지 않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옛사람들이 새벽 세 시부터 다섯 시를 호랑이의 시간, 인시(寅時)라고 부른 것도 하루 중 이때가 가장 미지의 것으로 가득 찼기 때문일까. 날이 밝아오기 전, 세상이 고요한 어둠 가운데 빛을 기다리는 이 시간은, 그 자체로 호기심 어린 호랑이 한 마리다. 지금 우리는 크고 총명한 눈을 반짝이며, 한 걸음 한 걸음 호랑이의 시간을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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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윤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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