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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우서라[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5〉

동아일보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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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은 없을 텐데
나중은
젊은 날 누군가를 사랑하여
길고 긴 쓰린 밤으로 배운 하나
나중은 없다는 것

그래도
그래도 혹시나 해서
치매 앓는 엄마 곁에 붙어
제 절로 떨리는 노구의 메마른 손을 잡고
엄마 우리 한 번만 다시 만나
응?
하고 물으니
그래, 하고 일생처럼 답을 하고서
아이, 우서라
병아리가 활짝 날개를 펴듯 웃으며
구순의 소녀가 잠시 노란 꽃으로 피어난다

―박철(1960∼ )



아이, 슬퍼라. 시인은 제목을 “아이, 우서라” 하고 지었지만 시를 읽은 독자는 슬퍼진다. 왜 슬플까? 까닭을 헤아려보니 “나중은 없을 텐데” 하는 깨달음 때문이다. ‘나중’이란 시간은 지금이 아닌 시간, 올지 안 올지 장담하기 어려운 미래다. 미래가 막연해지면 희망도 흐려지는 법이다.

1연에서는 ‘나중’이란 시간이 오지 않을 시간임을 예감하며 슬픔으로 차있다. 2연은 좀 다르다. “그래도”란 세 음절에 기대어 ‘현재’를 그리고 있다. 치매를 앓는 구순 노모의 손을 잡고 “엄마 우리 한 번만 다시 만나/응?” 하고 묻는 아들의 안타까운 마음은 현재에 있다. “그래” 하며 산뜻하게 대답하는 노모는 나중이 아닌, 지금을 산다. 정말 그럴 수 있다는 듯이 대답하고 소녀처럼 “아이, 우서라” 웃어버리는 어머니, “병아리가 활짝 날개를 펴듯 웃으며” 노란 꽃처럼 피어나는 어머니의 모습은 아직 이쪽이다. 아들의 슬픔과 어머니의 웃음이 이승과 저승처럼 멀어서 마음이 먹먹하다. “누군가를 사랑하여” 마음을 주어야 한다면, 기억해야 한다. 나중은 없을 것이다. 나중은 신기루처럼 휘발하는 것, 영영 오지 않을 미래다.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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