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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캄보디아 사태 이면, 위기의 지방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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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피해자 비수도권 출신 대부분
서울에서 출국한 실종자는 보고 안돼
사라진 관심... 드러난 지방 붕괴 단면


올해 8월 캄보디아 보코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의 유해가 지난달 21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송환돼 경북 경찰청 관계자에게 전달되고 있다. 뉴스1

올해 8월 캄보디아 보코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의 유해가 지난달 21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송환돼 경북 경찰청 관계자에게 전달되고 있다. 뉴스1


같은 학교 선배의 소개로 취업박람회를 다녀오겠다며 올해 7월 17일 캄보디아로 떠난 대학생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범죄단체에 납치돼 고문을 당했고 8월 8일 깜폿주 보코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북 예천군 출신 청년의 죽음은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10월 초에야 국내에 알려지며 이슈로 부상했다.

이 사건을 기폭제로 전국에 묻혀 있던 캄보디아발 실종 신고가 우후죽순처럼 튀어나왔다. 대부분 올해 봄여름 캄보디아로 떠난 뒤 연락이 끊긴 사례들. 이에 경찰청은 약 2년간 캄보디아 관련 실종·감금 의심 신고를 143건 접수했고, 그중 52건을 수사 중이라고 지난달 14일 발표했다.

지역별 신고 건수를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앞서 지방경찰청들에서 흘러나온 숫자들은 충북 10건, 전북 6건, 강원 4건, 대구 3건, 광주 3건 등 거의 모두 비수도권이었다. 서울에서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실종됐다는 신고는 보이지 않았다.

캄보디아에서 범죄 혐의로 현지 수사 당국에 붙잡혀 국내로 송환된, 온 몸에 문신이 그득한 피의자 64명도 대부분 지방 청년으로 추정된다. 이 중 45명을 충남경찰청에서 수사해 구속했고, 경기북부경찰청이 11명을 구속했다. 이 외 서울 서대문경찰서와 대전경찰청, 경기 김포경찰서가 각각 1명씩 구속했다. 충남경찰청은 지난해부터 수사하던 사건들과 연관이 있어 가장 많은 피의자를 맡게 됐다고 한다.

송환된 피의자들도 출신지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실종·감금 의심 신고가 빗발친 지역, 학연이나 지연을 통해 캄보디아로 떠나 범죄단체에 납치 또는 포섭되는 과정, 관할 수사기관 등을 고려하면 비수도권이 압도적일 것이다. 거칠게 압축하면 캄보디아 사태는 피해자와 피의자 대부분 비수도권 출신인 지방 청년들의 비극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23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를 보면 수도권의 전문대 이상 고등교육기관 취업률은 72.2%로 비수도권(68.5%)보다 3.7%포인트 높았다. 이 격차는 2022년 2.7%포인트에서 1년 새 더 벌어졌다.


표면상 취업률 차이보다 지방 청년들이 체감하는 일자리 질의 격차는 더욱 크다. 누구나 원하는 대기업과 연구기관 등이 수도권에 집중돼 지방에는 그들이 인생을 걸 만한 양질의 일자리가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그 틈을 범죄의 유혹이 파고들고, 그 연결고리가 같은 지역이나 같은 학교의 동년배라는 점은 지역 붕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방증이다.

학창 시절 지방에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은 대학부터 수도권으로 진학하고, 어떻게든 그곳에서 삶을 꾸려간다.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도 취업을 위해 또 수도권으로 몰려가고, 그마저 실패하면 낙오자 취급을 받는다. 일자리 찾기가 힘든 현실 속에서 '고수익 보장' '숙식 제공에 월 500만 원' 같은 유혹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범죄를 저질렀으면 죗값을 치르는 게 당연하나, 이 문제를 불안한 지방 청춘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는 사회구조와 분리할 수 없는 이유다.

지방 붕괴가 계속된다면 아무리 경찰관을 보내고 현지 정부와 소통해도 제2, 제3의 캄보디아 사태는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요란하게 뉴스의 머리를 장식했던 캄보디아 사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한미 관세 협상 등 메가톤급 이슈에 저만치 밀려났다. 그대로인 것은 지방 청년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뿐이다.

김창훈 전국부장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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