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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먹을 것과 못 먹을 것,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 정도만 구분하던 인간은 생각이 많아지면서 음식도 몸에 좋은 것, 보기에도 좋은 것, 살찌지 않는 것,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 따위로 분별하게 되었다. 생각이란 세계를 이리저리 분별하는 힘. 어떤 걸 다른 것에서 떼어내어 이름을 붙이면서 생각의 싹이 텄다.
생각의 바탕이 되는 이런 분별심이 벅찼는지 그 반대편, 즉 분별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는 것을 종교적 수행이나 마음 닦기의 목표로 삼는다. 멍때리기 대회까지 있는 걸 보면, 평소에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생각은 사람이나 사물을 굳이 겉과 속으로 나누어, 둘이 다르면 표리부동하다며 욕하고, 같으면 칭찬한다.
분별하는 마음의 고급 버전이 ‘그럴듯하다’라는 말. 우리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참과 거짓을 재빨리 구분하는데, ‘그럴듯하다’는 이 둘의 사이에 있는 무엇을 가리킨다. 어정쩡한 만큼 쓸모가 있다. 우리는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그럴듯한 얘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그 얘기를 믿고 따라 하기도 한다. 잘못을 범한 사람은 그럴듯한 변명을 찾아 잔머리를 굴린다. 특별한 날에는 그럴듯한 옷을 입고 그럴듯한 식당에서 그럴듯한 음식을 먹는다. 글을 다 쓰면 그럴듯하게 제목을 붙이라고 하기도 한다.
겉이 속과 같지 않다고 해서 마냥 비난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거짓과 진실, 좋음과 나쁨 사이에서 배회하며 산다. 다만 좀 더 진실되거나 좀 더 좋은 쪽으로 살고 싶어 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 삶 자체가 그럴듯해 보이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인지 모른다. 문제는 겉과 속 간의 거리. 그리 멀지 않으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게 되지만, 너무 멀면 자신을 무너뜨리는 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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