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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물을 스칠 때”…사계가 아름다운 지리산 화엄사 [정용식의 사찰 기행]

헤럴드경제 민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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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전남 구례군 화엄사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전남 구례군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

전남 구례군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





‘새로운 세계와 마주쳐 깨달음을 얻은 상태’를 송나라 시인 소옹은 한시 ‘청야음(淸夜音)’에서 ‘바람이 물을 스칠 때(風來水面時)’라는 시구로 표현했다. 한 번쯤 곱씹게 하는 은유적 표현이 주는 울림들이 있다.

긴 연휴 끝 무렵, 지리산 화엄사에서 개최된 ‘제21회 화엄문화제’의 주제어가 ‘바람이 물을 스칠 때’였다.

화엄문화제에선 국보 301호로 지정돼 꼭꼭 숨겨 보관하고 있는 높이 12m 크기의 ‘영산회 괘불탱’이 일 년에 딱 하루 대중에게 공개되는 특별한 행사가 있다.

조선시대에 제작돼 360여년간 화엄사에서 봉행된 야단법석의 주존 불화로서 화엄문화제 첫날에 괘불재를 봉행한다.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화엄사 각황전을 지켜 낸 고(故) 차일혁 경무관의 추모제와 함께한다.

전국 요가대회와 발레공연, 음악제 등을 통해 마음을 편히 내려놓고 일상으로 복귀할 힘을 얻는 귀한 시간도 마련됐다. 가을엔 여기저기 많은 사찰에서 여러 형태의 문화행사를 통해 시민들과 함께하고 불교문화를 공유한다.


3월 화엄사에서 열리는 홍매화 축제 모습

3월 화엄사에서 열리는 홍매화 축제 모습



화엄사는 언제 가도 아름답고 잘 정돈된 사찰이다. 봄을 알리는 3월에는 홍매화 사진 축제가 열려 원근 각지에서 방문한 사진작가들을 위해 스님들이 빗자루를 들고 연출까지 해 준다.

화엄사 홍매화 야경

화엄사 홍매화 야경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홍매화는 밤의 불빛 아래서도 각황전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동에서 화엄사에 이르는 국도변에 4월 벚꽃이 만개할 때면 드라이브 코스로 섬진강 매화마을, 쌍계사 등으로 이어져 수많은 상춘객이 몰리기도 한다.

여름이면 지리산 자락의 시원한 계곡물 소리와 함께 ‘모기장 음악회’도 열린다. 가을 단풍, 겨울 설경 등 어느 계절도 빼놓을 수 없이 화엄사는 현대인의 지친 마음에 순간순간 쉼표가 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통해 모든 게 하나로 융합되는 ‘화엄사상’을 실현되고 있는 것 같다.


화엄 본찰 화엄사
각황전

각황전



국보로 지정된 거대한 중층 불전 각황전이 상징처럼 자리한 화엄사는 전남 구례군 구례읍에서 동쪽으로 5.4㎞ 떨어진 곳,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자락에 있는 천년 고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로서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에서 연(鳶)을 타고 한국에 와서 불교를 전파했다는 전설적 인물 연기조사가 창건했다.


절의 이름은 화엄경(華嚴經)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신라가 구례 지역을 점령한 이후인 643년에는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가져와 절을 증축하고 4사자 3층 사리석탑과 공양탑을 세웠으며 화랑도에 화엄사상을 가르치며 군사 교육 용도로도 활용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인 677년(신라 문무왕 17년)에 당에서 화엄종을 공부하고 돌아온 의상대사가 각황전(장육전)을 창건하고 왕명으로 석판에 화엄경 80권을 새겼다. 875년에는 도선국사가 크게 증축해 대총림으로 승격시켰고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에는 더욱 확장됐다.

화엄사 전경

화엄사 전경



억불 시대인 조선시대에도 세종 때에 선종 대본산으로 승격돼 고승대덕들에 의한 법석의 요람이 됐지만 임진왜란 때 구례 석주관에서 승병 300여 명을 조직해 왜군에 맞서 싸운 앙갚음으로 왜구에 의해 전소되기에 이른다.

인조 때 벽암선사에 의해 대웅전이, 숙종 때는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웅장한 각황전(장육전)이 중건되면서 다시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대가람이 됐다. 선교양종이란 참선을 통한 자신의 깨달음을 중시한 선종과, 경전을 중요시하는 교종이 결합한 것이다.

차일혁 경무관 추모비

차일혁 경무관 추모비



6·25 전쟁 때 ‘빨치산들이 지리산 절에 숨을 수도 있으니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이 내려졌지만, 이를 지시받은 차일혁 총경이 “태우는 건 하루면 족하지만 다시 세우려면 천 년도 부족하다”면서 대신 빨치산이 숨기 힘들도록 문짝만 모두 떼어 태움으로서 화엄사가 전쟁의 화마로부터 살아남았다.

이 때문에 차일혁 총경은 감봉 조치를 당했지만 후일 지리산의 문화유적을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이 추서되고 뜻을 기리는 추모탑도 화엄사에 설치됐다.

화엄사 조감도

화엄사 조감도



화엄사는 국보 5건, 보물 9건 및 여러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과 명승으로 지정됐다. 특히 사찰 주차장에서 오른편으로 올라가는 조그만 암자(지장암) 뒤편에 있는 ‘올벚나무’와 화엄사 경내에 있는 ‘화엄매’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400여 년 전 벽암 스님이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활을 만드는 데 쓰이는 올벗나무를 심었는데 그 중 아직 살아남은 나무라고 하는데 이정표가 없어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화엄사 경내에서 구층암을 지나 계곡 옆에 피어있는 하얀 매화 ‘백야매(白野梅, 일명 들매화)’가 먼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었다. 2024년에 화엄사 각황전 옆의 ‘홍매화(紅梅花, 흑매)’도 천연기념물로 함께 지정되면서 홍,백 두 그루 매화를 ‘화엄매’라 부르고 있다.

홍매화와 각황전, 화엄사의 절경
각황전 옆 홍매화

각황전 옆 홍매화



화엄사 매화라고 하면 으레 각황전 옆 홍매화(흑매)가 떠오른다. 오래전부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토종 매화인 들매화(백야매)는 계곡 깊숙이 숨어 있고 자태 또한 평범해서 많은 사람이 모르지만, 홍매화는 위치도 그렇고 자태도 워낙 출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화엄사 흑매는 전남대 홍매(대명매), 백양사 고불매, 선암사 선암매, 담양지실마을 계당매와 함께 호남 5대 매화로까지 불리고 있다.

화엄석경관

화엄석경관



주차장에 들어서니 ‘화엄석경관’이라는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화엄경 80권을 석판에 새겼는데 임진왜란 때 절이 전소되면서 훼손돼 파편으로 남은 ‘화엄석경’(보물)을 전시하고 있는 듯하다.

화엄사 일주문

화엄사 일주문



이곳에서 조금 올라와 화엄사 방향이 아닌 우측 산길로 가면 호국정신을 간직한 천연기념물 올벚나무도 만날 수 있다.

금강문

금강문



약간의 산자락 경사를 이용해 전각들이 배치된 화엄사는 일주문 역할을 하는 불이문과 일직선상에 있는 금강문 사이 한편에 용도가 불분명한 고려시대 돌항아리와 차일혁 경무관 추모비가 서 있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돌항아리

고려시대 만들어진 돌항아리



천왕문은 독특하게 금강문에서 약 30도 꺾여 있다.

천왕문

천왕문



다시 올라가면 보제루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누각 밑을 통과해 대웅전을 마주하게 되는데 화엄사는 누각 밑이 아니라 동쪽 옆을 돌아 들어가게 돼 있다.

보제루

보제루



화엄사는 각황전이 압도적으로 크고 웅장해 대웅전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여, 이를 보완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다시 보니 보제루를 오른쪽으로 돌게 되면 거리상 각황전은 멀어지고 대웅전은 상대적으로 가까워 원근감에 의해 각황전과 대웅전의 크기 차이가 크게 줄어들었다.

동·서 오층석탑

동·서 오층석탑



또 각황전 앞 석등과 그 아래에 서 오층 석탑이 삐뚤게 배치돼 있다.

서 오층석탑

서 오층석탑



대웅전 앞 아래에 있는 동 오층 석탑도 정 중앙을 벗어나 삐뚤게 배치돼 있다.

동 오층석탑

동 오층석탑



보제루를 돌아서 각황전과 대웅전, 탑과 석등 전부를 동시에 바라보게 되면서 오층 석탑·석등·각황전이 일렬로 놓이고, 동 오층 석탑과 대웅전이 일직선상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특이하며 탁월한 선택이다.

보제루 앞마당에서 열린 요가 대회

보제루 앞마당에서 열린 요가 대회



보제루 앞마당에서는 대중에게 공개된 국보 ‘영산회 괘불탱’을 세워두고 ‘요가대회’ 행사가 한창이다.

서 오층석탑의 섬세한 장식

서 오층석탑의 섬세한 장식



마당 좌우 양편에는 신라시대 작품으로 보물로 지정된 5층 석탑이 동, 서로 있다.

크기는 비슷하지만 서탑은 뛰어난 조형성과 섬세한 장식이 눈길을 끄는 반면 동탑은 단정하고 단순한 모양이다.

대웅전

대웅전



앞마당에서 경사 급한 계단을 오르면 보제루 정면 쪽에는 보물 대웅전이 있고 좌측면 쪽에는 국보 각황전이 자리한다.

화엄사 목조 비로자나삼신불좌상

화엄사 목조 비로자나삼신불좌상



대웅전에는 17세기에 제작된 ‘목조 비로자나삼신불좌상’이 모셔져 있는데 우리나라 불상 조각 중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로 이루어진 유일한 ‘삼신불’로 국보로 지정됐다.

중층(내부는 층 구분이 없음)으로 돼 있는 각황전은 조선 후기에 중건된 웅장한 규모의 불전 건물로 균형감과 조화미를 보여주고 있어 국보로 지정됐다.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다보불 등 3여래(三如來)와 보현, 문수, 관음, 지적(知積)보살 등 4보살(四菩薩)이 봉안돼 있는데, 이 또한 보물이다.

각황전은 대웅전과 함께 화엄사의 주 불전이지만 각황전·홍매화·원통전으로 이뤄지는 기역(ㄱ)형 앞마당이 화엄사의 중심 영역이 되고 있다.

각황전 앞 석등

각황전 앞 석등



국보로 지정된 각황전 앞 석등은 지금은 해체보수 중이어서 상층부를 볼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높이 6.3m로 국내 최대 규모라고 한다.

사자탑

사자탑



석등 옆 사자 4마리가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사자탑도 신라시대 작품으로 보물이다.

4사자 삼층 석탑

4사자 삼층 석탑



각황전 왼편 돌계단을 올라가면 좌측엔 적멸보궁이 있고 우측에 효대라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4사자 삼층 석탑’은 자장율사가 창건주 연기조사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불사리 공양탑이다.

3층의 탑신 아래 연화대를 받치고 있는 4마리의 사자상 가운데 합장하고 있는 천인상(天人像)이 조각돼 있다.

4사자 삼층 석탑과 석등

4사자 삼층 석탑과 석등



이 천인상을 연기조사의 어머니라 하고 이 석탑을 바라보고 있는 앞 석등 아래쪽에 꿇어앉아 있는 승상(僧相)은 효성이 지극한 연기조사가 불탑을 받들고 서 있는 어머니께 석등을 머리에 얹고 차 공양을 올리는 모습이라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국보로 지정됐다.

4사자 삼층 석탑이 있는 효대에서 바라본 화엄사

4사자 삼층 석탑이 있는 효대에서 바라본 화엄사



‘4사자 삼층석탑’이 있는 효대에서 멀리 바라보니 웅장한 모습의 금정암과 국립공원 지리산 절경이 눈을 시원하게 하고 아래에는 각황전 지붕과 화엄사 전경들도 한눈에 들어온다. 최고의 전망대이다.

고즈넉한 구층암의 모과나무
구층암 전경

구층암 전경



화엄사 입구에서 우연히 마주친 ‘죽로야생차 다담(茶談)’이라는 구층암 안내판에 쓰여 있는 정찬주 소설가의 ‘인연’ 한 구절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구층암 선방 너머로는 지리산 계곡물이 소리쳐 흐르고, 천불전 계단 옆에는 모과나무 꽃이 만발해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리산에 자생하는 모과나무였다.
고목이 되면 목재로 사용하는 듯 구층암에는 울퉁불퉁한 모과나무 기둥들이 기와지붕을 떠받들고 있었다.정찬주 작가의 소설 ‘인연’
대웅전 뒤편 ‘백매화’ 가는 길목 조리대 숲길을 따라 10여분 올라가니 수수하고 고즈넉하게 보이는 구층암이 나타났다.

구층암 천불보전 앞 석등

구층암 천불보전 앞 석등



구층 석탑이 있어서 구층암(九層庵)이라 했다. 지금은 요사채 앞쪽의 오래된 3층 석탑과 요사채 후면에 있는 주 불전인 천불보전 앞에 문화재로 지정된 석등만이 있을 뿐이다.

구층암 천불보전 옆 모과나무

구층암 천불보전 옆 모과나무



‘천불보전’ 계단 옆에는 역시나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은 모과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구층암 천불보전

구층암 천불보전



이 모과나무도 언젠가는 고목이 되면 울퉁불퉁한 나무 기둥이 돼 그 어느 지붕을 아름답게 떠받들고 있으리라.

모과나무 기둥

모과나무 기둥



자연 그대로의 모과나무 기둥을 써서 전통 건축에 관심 있는 분들이 찾는다는 소문처럼 ‘구층암 요사채 후면 건물 기둥이 독특하고 아름답고 재미있어 보인다.

자연미가 그대로 드러난 모과나무 기둥이 있는 툇마루에 걸려있는 ‘차향이 사방으로 퍼진다’는 ‘다향사류(茶香四流)’라는 목각현판도 눈에 띈다.

구층암 요사채 앞쪽 3층 석탑

구층암 요사채 앞쪽 3층 석탑



죽로야생차로 유명한 듯 툇마루에 놓인 ‘따뜻한 차 한잔하고 가세요’라는 못난이 글씨를 보며 잘 꾸며진 화엄사 넓은 찻집도 좋겠지만 이곳 툇마루에 걸터앉아 진한 죽로차 한잔 마셔보는 것은 어떨까.

꾸미지 않은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껴지는 암자다.

타종하는 스님의 모습

타종하는 스님의 모습



12시를 알리는 화엄사 타종 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진다. 타종하는 스님의 모습도 연출하듯 정갈하다.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소리 이상의 심오한 진리도 함께 전달하는 것 같다.

벽암국일도대선사비

벽암국일도대선사비



화엄사를 되돌아 내려오는데 금강문 입구에 ‘벽암대사(1575~1660)비’(보물)가 이제야 보인다.

조선 중기 대표적 선승이자 임진왜란, 병자호란에 참전했던 의승장이며 임란 이후 소실됐던 화엄사를 중건하는 등 피폐화된 불교 중흥과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스님이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고은의 시 ‘그 꽃’
가끔은 바쁜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크게 하면서 주변을 둘러봐야겠다.

내게도 때때로 느린 걸음이 필요해 보인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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