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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발장 경찰과 노래방 판사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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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청원경찰서는 지난 10월25일 편의점 강도를 검거한 뒤 귀가조처했다. 경찰은 너무 굶주려 편의점에 들어가 식료품 등을 강취한 ‘현대판 장발장’으로 보고 구속 수사 대신 치료를 병행하는 불구속수사를 택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충북 청주청원경찰서는 지난 10월25일 편의점 강도를 검거한 뒤 귀가조처했다. 경찰은 너무 굶주려 편의점에 들어가 식료품 등을 강취한 ‘현대판 장발장’으로 보고 구속 수사 대신 치료를 병행하는 불구속수사를 택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김동훈 | 전국부장





장 발장(Jean Valjean)은 19세기 초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이다. 이름이 장이고, 발장은 주변 사람들이 “저, 장 녀석”(Voila Jean)이라고 부르던 것이 거의 성처럼 여겨져 장 발장이 됐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그저 장삼이사다. 아니 그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장 발장은 달랑 빵 한 조각 훔쳤다가 무려 19년간 옥살이를 했고, 출소 뒤에도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던 장 발장의 눈빛엔 19세기 프랑스 민중의 비참한 삶과 사회적 불평등이 담겨 있다. 미리엘 신부의 자비에 감명받아 마들렌으로 이름을 바꾸고 새 삶을 살지만 평생 그를 쫓는 냉혹한 경찰 자베르 경감과 갈등을 빚는다. 소설에는 인간의 죄와 구원, 희생과 용서 등이 얽혀 있다. 장 발장이 죽음을 눈앞에 둔 불행한 여인 팡틴의 유일한 희망인 그의 딸 코제트를 돌보는 장면은 인간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프랑스의 톨레랑스 정신과 맞닿아 있다.



2012년 12월19일, 소설과 같은 이름의 영화가 국내에 개봉한 날은 마침 18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3.5%포인트, 108만여표 차이로 제치고 당선되자 실의에 빠진 진보 진영 지지자들은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를 힐링 삼았다.



장 발장은 작가 위고가 창작한 인물이 아니라 외젠프랑수아 비도크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다. 장 발장에게 새 삶을 선사한 미리엘 신부도 실존 인물 비앵브뉘 드 미올리 가톨릭 주교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장 발장과 미리엘 신부, 그리고 부당한 사법제도는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존재한다.



얼마 전 ‘청주 편의점 장 발장’에게 수갑 대신 온정을 베푼 경찰관들이 표창을 받았다. 새벽 2시30분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ㄱ(59)씨는 옷 속에 과도를 품고 편의점에 들어가 김밥과 피자 등 4만9천원어치를 챙겼다. 편의점 직원에게 “배가 고프다. 내일 계산하겠다”고 했지만 직원이 거절하자 과도를 보인 뒤 달아났다. 수사에 나선 청주청원경찰서 형사과 김영태 경감과 이황 경장은 사건 발생 사흘 뒤 편의점 주변 원룸에 살던 ㄱ씨를 찾아갔다. ㄱ씨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야윈 상태였다고 한다. 둘은 사람부터 살려야겠다는 마음에 수갑 대신 영양 수액(4만2천원)을 맞게 했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ㄱ씨는 석달 정도 일을 못 했고 열흘 정도 굶었다고 했다. 두 경찰은 사비로 식료품을 사 그의 손에 쥐여 줬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민생회복지원금 등 복지제도의 존재조차 몰랐던 그에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지정을 신청하도록 했다. 심사 결정이 나올 때까지 석달 동안 다달이 76만원의 임시 생계비가 나온다. 둘을 표창한 경찰은 “법의 이름으로 체포하고, 인간의 마음으로 품었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미담만 있는 건 아니다. 빵을 훔치고 19년 징역을 산 장 발장처럼 승차요금 24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버스 기사도 있다.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명했다가 철회한 헌법재판관 후보 함상훈 판사가 8년 전 내린 판결이다. 제주지법 오창훈 부장판사는 집회 때 경찰관을 다치게 한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농민과 노동자에게 2심에서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법정구속 직전에는 방청석을 향해 “한숨도 쉬지 마라, 어기면 바로 구속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오 판사는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된 상태다. 또 다른 재판에선 교통사고에 대해 1심 무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을 2심에서 법정구속해 자백이 나오자 유죄 판결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자백의 신빙성을 문제 삼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됐다.



오 부장판사는 제주지법 강란주 부장판사, 여경은 수원지법 평택지원 부장판사와 함께 지난해 6월 노래방에서 음주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여 부장판사는 고교 동문 변호사와의 부적절한 카카오톡 대화로 ‘애기 판사’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세 판사는 국회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거부하다가 동행명령장을 받았다. 오창훈·강란주 판사는 끝내 출석을 거부했다. ‘사법권 독립’을 저해한다는 이유다. ‘대낮 음주 노래방 판사’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세 부장판사에 대한 법원 감사위원회의 징계도 ‘경고’에 그쳤다. ‘레 미제라블’은 현실이다.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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