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은 마음의 암에 가깝다. 우울증은 감춰진 채 치명적인 수준까지 악화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마음건강 톡톡 페스티벌’에서는 우울증 문제가 주요하게 다뤄졌다. 윤은숙 기자 |
“우울증은 울고불고하는 병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잠만 잤습니다.”
2016년 여름, 평범한 회사원이던 최의종씨의 삶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씩씩하고 명랑했던 아내가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것이다. 몇 달 전부터 징조는 있었다.
대학병원에 다니며 두 아이를 성실히 돌보던 아내가 점차 시들어갔다. 두통과 만성 통증, 불면증에 시달리던 아내의 말수가 줄었고, 퇴근 후 계속 누워 있는 날이 늘었다. 마침내 아이들을 씻기고 옷을 입히는 작은 일조차 버거워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이가 있는 집이었지만, 웃음소리를 찾기 어려웠다. 대화는 최소한으로 줄었고, 단란하던 가족의 일상은 서서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최씨는 아내의 우울증을 제대로 알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고백했다. 그가 처음 마주한 우울증의 모습은 너무나 낯설었다. 감정 기복이 심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대신, 아내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기운이 없어 화장실도 참았다가 겨우 가고, 눈을 뜨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표정이 사라지고 초췌해진 아내를 보면서도 진짜 원인을 잡아내지 못했으며, 6개월이 지나서야 병원에서 병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후 아내의 투병이 7년 동안 이어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해 초 발간된 ‘소중한 사람을 위해 우울증을 공부합니다’(라디오북 펴냄)의 저자 최씨는 여전히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40대 중반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여러 강연장과 매체에서 우울증 환자와 가족들을 돕기 위한 강연을 이어가는 우울증 간병 당사자이기도 하다.
지난달 26일 서울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마음건강 톡톡 페스티벌’에서 우울증 문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윤은숙 기자 |
무려 7년, 배우자의 우울증이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최씨는 ‘공부’라는 동아줄로 버텼다. 아내의 회복을 돕기 위해 병을 공부하고 적극적인 병원 치료는 물론, 운동을 비롯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했다. 다행히 아내는 현재 건강한 일상을 이어갈 정도로 회복됐다. 지난달 26일, 서울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마음건강 톡톡(Talk Talk) 페스티벌 –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Ⅱ’에서도 그는 병을 제대로 알리자는 취지로 강연을 맡았다.
“눈치채기 어려운 우울증, 마음의 감기가 아닌 마음의 암”
최씨는 병의 치료를 위해서는 우선 병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골든타임을 놓쳤던 데는 우울증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도 한몫했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모든 우울증이 약 먹고 몇 주나 몇 달이면 쉽게 나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의 아내가 앓았던 것은 치료가 어려운 ‘치료 저항성 우울증’이었다.
치료 저항성 우울증이란 두 가지 이상의 항우울제를 충분한 양과 기간 동안 복용했는데도 효과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연구마다 차이는 있지만, 2023년 세계정신의학회(WPA)의 공식학술지 ‘세계정신의학’(World Psychiatry)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주요 우울장애를 앓는 환자 중 30~40%가 치료 저항성 우울증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들의 자살 위험 역시 다른 주요 우울장애 환자보다 크게 높다는 것이다.
올해 국제학술지 ‘비엠시(BMC) 정신의학’에 게재된 연구는 치료 저항성 우울증 치료가 얼마나 힘든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구진은 환자 2409명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첫 치료를 시작한 뒤 세 번째 치료까지 가는 데 걸린 기간은 평균 11.5개월밖에 안 됐다. 즉, 이 병은 발병 초기부터 빠르게 악화되고 고치기 어려운 만성 질환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연구 결과를 보면 치료가 거듭될수록 치료 방법도 복잡해진다. 처음에는 환자의 91%가 항우울제 한 가지만 복용했다. 하지만 세 번째 치료 단계(치료 저항성 우울증 진단 시점)에 이르면, 한 가지 약만 쓰는 경우는 39.4%로 급격히 줄어든다. 대신 항우울제에 다른 약을 추가로 병행하는 치료가 55.6%로 늘었다. 약 한 가지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게다가 환자의 47.6%가 불안장애마저 동반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치료 궤적이 연령, 성별, 불안 유무 등 개별 환자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다”며 “획일적인 치료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임상적 특징에 기반한 ‘정밀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병의 예후 개선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최씨는 치료 저항성 우울증을 두고 “솔직히 마음의 암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우울증은 감춰진 채 치명적인 수준까지 악화하기 때문에 감기보다는 암에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주변의 도움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만든 자살예방 프로그램이 보고, 듣고, 말하기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통받는 이들의 자살 예방을 위하여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신호를 발견하고(보고), 무엇을 묻고 어떻게 이야기를 듣는지(듣기), 이후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말하기)를 가르치는 것이다.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는 “이미 절망에 빠진 사람은 도움을 요청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자살 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살 경고 신호를 주변 사람들이 인지하고 대응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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