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보호무역주의, 저가 중국산 공급 등에 따라 국내 철강업계에 냉기가 짙어지고 있다. 정부는 위기를 타개하고자 철강업계의 생존력 확보와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구조 재편에 나서기로 했다.
4일 철강업계와 산업통상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9월 한국 조강 생산량은 500만t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4% 줄었다. 조강이란 쇳물을 부어 만든 최초의 고체 형태 철강 생산품으로, 조강 생산량은 철강 경기를 알 수 있는 지표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고율 관세, 중국발 저가 철강재 공급, 건설 부문 수요 부진 등을 생산량 감소의 원인으로 본다. 지난달 한·미 관세 후속 협상이 타결됐지만, 철강·알루미늄 등은 여전히 50% 품목관세를 부과받고 있다.
미국은 자체 철강 생산도 늘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특별연설에서 “우리는 엄청난 양의 철강 생산을 시작했다. 아주 짧은 기간 내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올해 3분기 대미 철강 수출액은 7억7069만달러(약 1조11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나 감소했다. 여기에 유럽연합(EU)도 연간 무관세 할당량(쿼터)을 1835만t으로 제한하고, 쿼터 초과 물량에 부과하는 관세율도 50%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내 건설 경기 부진이 길어지면서 올해 철근 수요도 역대 최저치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국내 철근 수요는 798만t으로 2021년(1132만t)보다 약 30% 줄었다. 포스코 1제강공장과 현대제철 포항2공장 등 문을 닫는 공장도 나오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울 때 가장 먼저 거론하는 업종이 철강”이라며 “보수적으로 보면 4분기는 물론 내년도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위기에 산업부는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이날 발표했다. 먼저 공급과잉에 따른 경쟁력 약화 품목에 대한 선제적 조정에 착수, 철근을 비롯해 형강, 강판 등 범용재 생산 조정에 나선다. 특히 철근은 수입재 침투율이 3% 수준으로 낮고 기업의 자발적 설비 조정 노력이 미진해 설비 조정 중점 대상으로 선정했다.
정부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 철근 설비 조정에 나서도록 세제 등 각종 인센티브를 지원키로 했다. 또 국회에서 추진하는 철강산업 특별법 등을 통한 지원 방안을 모색한다. 기업의 자율적 설비 조정 계획이 있는 경우 ‘산업위기 선제대응 지역’ 지정 등 지원을 검토하고, 열연·냉연·아연도금 강판 등 수입재 침투가 높은 품목은 수입 대응책을 강화한 뒤 단계적으로 설비 감축 여부를 논의한다.
이와 함께 내년부터 수입 철강재에 대한 품질검사증명서(MTC) 도입을 의무화하는 등 불공정 수입재 유입 방지책도 내놨다. 제3국 및 보세구역을 통한 반덤핑 관세 회피를 차단하는 등 우회 덤핑 규제도 강화한다.
저탄소 공정으로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지원도 본격화해 지난 6월 8100억원 규모로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실증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로 했다. 타격이 예상되는 포항·광양·당진 등 철강 집적지에는 산업위기 선제대응 지역 지정을 통한 지원을 병행한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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