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9일 대전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정규리그 한화 대 삼성 경기를 남편·아들과 함께 직관했다. 우리 가족 앞뒤로 앉은 20대와 50대는 각각 친구끼리 나란히 앉아 서로 다른 팀을 열심히 응원했다. 8살 아들은 광주 원정경기 때 기아팬인 삼촌과 나란히 서서 응원 경쟁을 벌였다. 최예린 기자 |
최예린 | 전국팀 기자
자라면서 축구는 좋아했지만, 야구는 별로였다. 특히 전두환 군사정권 초기 만들어진 ‘프로야구’는 더 탐탁지 않았다. ‘프로야구=국민을 우매하게 만드는 것’이란 편견도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프로야구 소식을 확인하는 남편을 보면서도 속으론 ‘쯧쯧쯧, 몽매한 자여’라며 한심하게 여기곤 했다. ‘세상에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 자식은 참 무서웠다.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더니 야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이상하게도 ‘자꾸 이기는’ 한화 이글스가 화근이었다. 프로야구에 ‘부정적 속내’가 있던 나로선 아이가 프로야구 선수와 기록을 줄줄 외우고, 이글스 경기에 일희일비하는 게 마땅치 않았다. “걱정할 필요 없다”는 남편과 말다툼까지 했다.
한화가 연승 행진을 하는 가운데 ‘이글스 보살팬’ 취재를 시작했다. “충청 담당 지역기자로서 응당 취재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속마음은 ‘우리 집 남자들 마음이 도대체 뭔지’ 정말 궁금했다. 대전 야구장에서 한화 이글스 서포터스인 ‘잇츠한화’를 만나 명함을 건네고 쫓아다니기 시작했다(잇츠한화는 올해 20주년 된 가장 오래된 한화 이글스 팬클럽이다). 퇴근 뒤나 주말에 삼겹살에 소맥을 말아 먹으며 야구와 이글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광주 원정경기도 함께 직관하며 난생처음 야구장 응원도 해봤다. 잇츠한화 20돌 행사장에서 이글스 레전드 장종훈 선수를 영접해 사인도 받았다(사실 그전까진 장종훈이 누군지도 몰랐다).
그 과정에 남편과 아들도 있었다. ‘야구 일자무식’인 나로선 그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에게 “최애 선수가 누구냐”고 물으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최동원”이라 답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혼자 만들어낸 전설의 투수. 라이벌 팀인 해태 동료의 죽음을 계기로 프로야구 선수의 권익·처우 상향을 위한 선수협의회 창립을 처음 시도하다 시련을 겪은 비운의 스타”란 설명에 놀랐다.
전라도 광주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릴 때 경상도 사람 머리엔 뿔이 달린 줄 알았다. 주변엔 5·18에서 살아남은 어른들이 있었고, 전두환·노태우와 경상도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디엔에이(DNA)처럼 마음 어딘가에 각인됐다. 그러니 해태 선동열의 라이벌인 롯데 최동원도 적진의 에이스일 뿐이었다. 그런데 엄혹한 시절 자기 삶을 걸고 불의에 맞선 사람이 프로야구 안에도 있었고, 그걸 주도한 선수가 경상도 출신이라니 놀라웠다. 내면 깊이 똬리 튼 ‘편견’이 부끄러웠다.
취재하며 만난 야구팬들은 더 놀라웠다. 그들은 함께 경기를 보며 응원하는 그 순간 자체를 야구팀만큼이나 사랑하는 것 같았다. 꼭 출신 지역에 따라 응원할 팀을 정한 것도 아니었다. 선수별 응원가가 울려 퍼질 땐 그 선수의 부모인 것처럼 나도 울컥했다. 노래하고 춤추며 응원하는 관중을 보며 2002년 거리를 메운 ‘붉은 악마’나 지난겨울 내란에 맞서 광장에 나왔던 응원봉들도 떠올랐다. 그런 열정과 결의, 신명이 야구장 안에 가득했다. 설사 오늘 지더라도 ‘내일은 이기겠지’ 읊조리며 돌아서는 소박한 희망도 그곳에 있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랑 손잡고 야구를 보러 다녔다는 20대 한화팬의 말은 거의 도인 같았다. “지금 한화가 1등을 하고 있어 정말 좋지만, 꼭 우승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선수들이 그냥 열심히 최선을 다해준다면 그걸로도 좋다. 마음을 내려놓으려 애쓴다”는 청년의 대답은 놀라웠다. 승패는 문제가 아니었다. 야구도 그걸 보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그 속에서 함께 울고 웃고 모이고 풀어져 삶을 이어나간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깨달음에 이르자 불편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프로야구를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전두환 정권의 불순한 의도도, 지역 따라 출신 따라 배척하던 마음도, 이제 와 그보다 중요하겠는가. 야구엔 죄가 없지 않은가.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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