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철근업, 민간 주도 구조조정안
경쟁관계 넘어 소통창구 개설
정밀진단 거쳐 펀드자금 활용
3단계 자구방안 로드맵 제시
업계 “고도화는 비현실적 해법”
공급량 조절·가격 정상화 구상
구조조정 특례 ‘K스틸법’ 관건
경쟁관계 넘어 소통창구 개설
정밀진단 거쳐 펀드자금 활용
3단계 자구방안 로드맵 제시
업계 “고도화는 비현실적 해법”
공급량 조절·가격 정상화 구상
구조조정 특례 ‘K스틸법’ 관건
철근업계가 심각한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에 민간 주도 구조조정을 위한 ‘3단계 로드맵’을 제시했다. 객관적인 진단을 통해 업체간 설비 경쟁력 우열을 구분한 뒤, 경쟁력 우위인 업체가 정부가 조성한 구조조정 펀드를 활용해 단계적으로 설비 통폐합을 하고 인력 인수인계 등을 통해 시장을 정리한다는 구상이다.
3일 철근업계에 따르면 업계는 최근 정부에 1단계 소통창구 마련, 2단계 설비진단 실시, 3단계 펀드 활용 정리 등 3단계 구조조정 로드맵을 제시했다.
1단계는 업체 간 상호 소통창구를 마련해 대화 채널을 구축하는 단계다. 그간 경쟁 관계에 있던 철강 업체들이 공급과잉 해소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협력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2단계는 설비진단을 통해 경쟁력 우위업체와 열위업체를 구분하는 작업이다. 노후도, 에너지 효율, 탄소배출량 등을 종합 평가해 설비의 경쟁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한다. 업계 관계자는 “설비 진단을 통해 어떤 설비를 유지하고 어떤 설비를 폐쇄할지 명확한 기준을 세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3단계는 구조조정 펀드 자금을 활용해 열위 업체를 안정적으로 정리하는 단계다. 현대제철·동국제강 등 설비 경쟁력이 우위인 업체가 펀드 자금을 활용해 중하위 업체의 설비를 인수한 뒤 폐쇄하고, 해당 업체의 인력을 승계하는 방식이다.
업계는 최근 시황 악화로 경영 의지를 잃은 일부 중·하위 업체들도 사업 정리 의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과 노란봉투법 등 최근 강화된 규제 리스크를 회피하면서 적정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업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철강업계에서는 3D 업종이라는 사회적 시선과 만성적 인력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등 열악한 환경 탓에 2·3세들이 경영 승계를 포기하거나 사업 철수를 검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중소 철근업체 중 상당수는 창업주의 2·3세가 경영을 맡고 있지만, 수익성 악화에도 노후 설비 등을 제값을 받고 팔기 힘들어 쉽게 사업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오너 2세들이 부친 세대가 평생 일궈온 사업을 자신 대에서 문 닫는다는 부담감에 적자를 보면서도 버티는 경우도 많다”며 “제값을 받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중소업체들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전했다.
업계가 이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정부가 조만간 발표할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이 철근 업계의 현실과 동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고부가가치 제품 전환’과 ‘품질 경쟁력 강화’는 철근 시장 현실과 맞지 않는다. 국내 철근 시장은 중소·대형 제강사, 신규 진입사 모두 품질에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KS규격을 충족하는 철근은 어느 업체 제품이든 건설 현장에서 동일하게 취급되며, 브랜드 프리미엠이나 기술력으로 차별화할 여지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3일 인천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한 제철공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주형 기자] |
철근업계는 중국산에 대한 반덤핑 제재를 강화하는 것도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본다. 국내 철근 가격이 이미 바닥 수준으로 낮아져 있어 중국산이 가격경쟁력을 발휘할 여지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석유화학 업계처럼 감산을 위한 명확한 구조조정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 오히려 철근 업계에는 더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업계는 정부 대책이 스페셜티 강화 등 제품 특성에 맞지 않는 일반론 위주의 ‘공염불’에 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실질적인 업계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민간 주도 구조조정 등 실효성 있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철근 업계는 한편 구조조정 과정에서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전환 특별법)’의 담합 관련 특례 적용을 기대하고 있다. 법안의 핵심은 공정위 특례로, 업체 간 설비 통폐합이나 공동운영을 추진할 때 ‘부당 공동행위(담합)’ 예외로 인정받아 구조조정 속도를 낼 수 있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서는 경쟁사 간 생산량 조절이나 가격 담합 시 공정위 제재 대상이 된다. 하지만 K-스틸법이 통과되면 구조조정 목적의 협의가 허용된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도 지난 인사청문회 당시 “K-스틸법 등 철강산업 구조조정 관련 특별법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겠다”며 “공정위도 기업결합 신고를 최대한 신속히 심사해 기업의 불확실성을 줄이면서, 독과점에 따른 가격 인상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정위 특례 등 내용이 담긴 K-스틸법은 지난 8월 여야 의원 106명이 공동 발의하며 초당적 지지를 받았다. 다만 발의 후 약 3개월이 지났지만 현재 법안소위 일정조차 잡지 못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K-스틸법이 통과되면 구조조정 펀드와 공정위 특례의 시너지로 철근업계 구조조정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며 “제재 부담 없이 업체 간 협의를 통해 시장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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