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퀸스의 한 놀이터에 모인 조란 맘다니 지지자들이 거리 유세를 위해 흩어지기 전 “임대료 동결”을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욕 | 정유진 특파원 |
미국 뉴욕시장 선거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2일(현지시간) 오후 뉴욕 퀸스의 한 놀이터에 수십명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모두 조란 맘다니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의 거리 유세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한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이 오늘 할 일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맘다니 후보의 정책을 설명하고 사전 투표가 마감되기 전 그에게 한 표를 행사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이들은 맘다니 선거 캠프에 소속돼 있거나 민주당 당원이 아닌, 그저 맘다니 후보를 지지하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이런 모임이 이날 하루에만 뉴욕 전역 수십 군데에서 동시 진행됐다. 선거 캠프를 처음 꾸릴 때만 해도 자금이 없어서 여론조사원조차 제대로 고용할 수 없었던 맘다니 후보가 이만큼의 인지도를 쌓아 올릴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지지자들 덕분이었다. 이들은 2명씩 조를 짜 흩어지기 전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치즈’ 대신 맘다니 후보의 주요 공약인 ‘임대료 동결’을 외쳤다.
크리스티나의 핸드폰 앱에 이들이 이날 방문해야 할 수십가구의 위치가 떠 있다. 각 가구를 클릭하면 유권자 이름과 숫자, 나이 등 기본적인 정보를 알 수 있다. 뉴욕 | 정유진 특파원 |
기자는 파키스탄 이민자인 홀리와 필리핀계인 크리스티나의 조에 동행하기로 했다. 맘다니 후보 캠페인 팀이 알려준 앱에 접속하자 이들이 이날 방문해야 할 가구의 위치가 지도에 표시됐다. 각 가구를 클릭하면 유권자 명단과 나이 등 간단한 정보가 보인다.
첫 번째 집에 도착한 크리스티나가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벨을 눌렀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문틈에 유인물만 꽂아놓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던 차에 마침 옆집 사람이 나오다가 이들을 보더니 “나 지금 맘다니 찍으러 간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모두가 이들을 반갑게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누구를 찍을지는 나의 프라이버시”라며 대화를 이어갈 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홀리와 크리스티나는 이런 이들에게도 정책홍보물을 건네주면서 “나중에라도 꼭 한번 읽고 참고해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홀리와 크리스티나가 조심스럽게 벨을 누르고 있다. 뉴욕 | 정유진 특파원 |
다음 집으로 이동하는 도중 둘에게 맘다니 후보의 어떤 점에 끌렸냐고 물었다. 이들은 임대료가 급등해 노동자에게 ‘거주 불가능한 도시’가 돼 버린 뉴욕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준다는 그의 공약 때문이라고 했다. 홀리는 “세상 사람들은 뉴욕 하면 월스트리트만 떠올리지만 월스트리트는 뉴욕의 극히 일부”라면서 “뉴욕 사람들이 모두 매킨지(컨설팅 업체)나 블랙록(자산운용사)에서 일하는 건 아니다. 뉴욕은 이 도시를 지탱하는 절대다수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라고 강조했다.
재가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크리스티나는 “월수입의 40%를 임대료로 내고 나면 식료품·의료비·양육비는 감당이 안 된다”며 “아이를 주간 보호 센터에 맡기는 비용은 거의 ‘임대료 한 번 더’ 수준”으로 높다고 했다. 이어 “나는 식료품 살 돈 아끼려고 친구도 안 만난다”며 “얼마 전엔 응급으로 치과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치료비가 부족해서 돈이 모일 때까지 2주나 기다려야 했다”고 털어놨다.
홀리가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후보의 정책 홍보물을 현관 손잡이에 걸어두고 있다. 뉴욕 | 정유진 특파원 |
홀리는 뉴욕을 텃밭으로 삼아왔던 민주당에 강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는 “나는 한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끔찍했다”며 “민주당은 민생에 관심이 없다. 표 얻으려고 그럴듯한 말만 하고 당선되면 딴소리를 한다”고 했다. 이어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아직도 맘다니 후보 지지를 선언하지 않은 것을 언급하면서 “이들(민주당 주류 정치인)은 그냥 직업 정치인일 뿐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데는 관심이 없다. (민주당) 시스템은 완전히 망가졌다”고 말했다.
홀리는 “경제 이슈를 대중영합적인 언어로 솔직하게 말하는 뉴욕시장 후보는 맘다니가 처음인데 나는 이게 맞다고 느낀다”며 “유색인종 상당수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던 걸 아느냐. 그들 중 이번에는 맘다니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언제까지 ‘차악 선택’ 게임만 할 수는 없다. 그런 계산으로는 변화가 오지 않는다”면서 “내가 맘다니를 좋아하는 이유는 적어도 그가 여기(엘리트 정치) 출신이 아니란 것”이라고 했다.
맘다니 후보가 당선되면 그는 최초의 무슬림 사회주의자 뉴욕시장이 된다. 무슬림인 홀리에게 맘다니 후보의 당선은 뉴욕이 2001년 9·11 테러의 트라우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음을 의미한다고 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9·11 테러 당시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홀리는 “나는 이슬람공포증의 시대를 관통해 왔지만 무슬림 혐오는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이번 선거 기간에도 얼마나 많은 혐오 언어가 난무했느냐”며 “무슬림 사회주의자가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은 혐오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만큼 모두가 기존 정치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해진 가운데 홀리와 크리스티나가 조란 맘다니의 정책 홍보물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욕 | 정유진 특파원 |
맘다니 후보가 당선되면 뉴욕시에 대한 연방 정부의 지원을 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가 두렵진 않냐는 질문에 크리스티나는 “맘다니의 당선을 막기 위한 위협 전술 혹은 공포 마케팅 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홀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행동에 옮길 수도 있겠지만 그건 맘다니가 일단 당선된 후 생각해 볼 일”이라면서 “적어도 맘다니는 어떤 문제에도 답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는 맞서 싸울 것이고 나는 그를 응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종료된 뉴욕시장 선거 사전투표에는 73만5000여명이 참여해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면 역대 가장 높은 사전투표율을 기록했다. 2022년 중간선거(사전투표 43만3000명) 당시 참여자 대부분이 55세 이상이었던 것과 달리 이번 선거에는 맘다니 후보의 주요 지지층인 젊은층이 대거 참여해 중간 연령이 50세로 낮아졌다. 현재 맘다니 후보는 대다수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2위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를 두 자릿수 격차로 앞서고 있다.
뉴욕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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