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한국일보 언론사 이미지

내가 위험목이라고? 플라타너스의 억울한 사연 [하상윤의 멈칫]

한국일보
원문보기
'명품 숲길' 만든다며 마포대로 플라타너스 싹뚝
논란 되자 "플라타너스는 위험목, 일제 잔재"
관리 부재 속 양산되는 '진짜 위험목'


나무를 보호할 목적으로 설치됐던 수목보호판은 오랜 세월 방치되며 나무를 옭아매는 형틀로 변했다. 나무의 호흡을 위해 만들어진 수목보호틀 내부의 한 뼘짜리 토양은 시멘트처럼 굳은 지 오래다. 마포구 연남동 거리를 걸으며 숨통이 조여진 채 부풀어 오른 플라타너스 가로수 밑동을 기록하고 한데 모았다. 하상윤 기자

나무를 보호할 목적으로 설치됐던 수목보호판은 오랜 세월 방치되며 나무를 옭아매는 형틀로 변했다. 나무의 호흡을 위해 만들어진 수목보호틀 내부의 한 뼘짜리 토양은 시멘트처럼 굳은 지 오래다. 마포구 연남동 거리를 걸으며 숨통이 조여진 채 부풀어 오른 플라타너스 가로수 밑동을 기록하고 한데 모았다. 하상윤 기자


서울 마포구가 ‘명품 소나무 숲길’을 조성한다며 마포대로(마포대교 북단~공덕역)의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를 모조리 베고 장송을 심은 이후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비판의 요지는 ‘멀쩡한 플라타너스를 제거하고 입지에 맞지도 않는 소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구청은 이에 ‘생육 상태가 불량한 위험목을 제거한 것’이라며 사업의 정당성을 주장해 왔다. 그것만으론 부족했는지, 지난 20일에는 ‘일제강점기 잔재인 플라타너스 대신 토종 소나무를 심었고, 소나무는 체계적인 관리 아래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추가로 내놨다.
연관기사
• 아낌없이 받아놓고, 아낌없이 잘라냈다 [하상윤의 멈칫]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2515210000231)

서울시 통계(2023년 기준)에 따르면, 마포구에는 2,786그루의 플라타너스가 가로수로 존재한다. 위험하고 역사적으로 부정하다는 오명을 구실 삼아 잘려나갈 수 있는 나무가 2,700그루에 이른다는 의미다. 그 많던 플라타너스는 어쩌다 한꺼번에 위험목이 돼 잘렸을까. 수십 년 시민들의 곁을 지켜온 플라타너스들도 새로이 심어진 소나무만큼이나 체계적인 관리를 받아왔을까.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구내 곳곳 거리마다 뿌리 내리고 서 있는 플라타너스의 현재 상태를 들여다봤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거리의 한 플라타너스의 줄기에 보도블럭 여러 개가 박혀 있다. 가로수는 나무의 직경이 커지는 만큼 근원부 주변 토양 공간을 넓혀줘야 정상적인 생육이 가능하다. 하상윤 기자

서울 마포구 연남동 거리의 한 플라타너스의 줄기에 보도블럭 여러 개가 박혀 있다. 가로수는 나무의 직경이 커지는 만큼 근원부 주변 토양 공간을 넓혀줘야 정상적인 생육이 가능하다. 하상윤 기자


서울 마포구 연남동 거리의 한 플라타너스의 줄기 속으로 콘크리트 덩어리가 파고들어 있다. 조여진 나무의 근원부가 종양처럼 부풀어 있다. 하상윤 기자

서울 마포구 연남동 거리의 한 플라타너스의 줄기 속으로 콘크리트 덩어리가 파고들어 있다. 조여진 나무의 근원부가 종양처럼 부풀어 있다. 하상윤 기자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플라타너스가 수목보호판 없이 방치돼 있다. 비대해진 근원부가 주변 포장 위로 흘러넘친 형상을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플라타너스가 수목보호판 없이 방치돼 있다. 비대해진 근원부가 주변 포장 위로 흘러넘친 형상을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서울 마포구 연남동 거리의 한 플라타너스 근원부가 좁은 수목보호틀을 완전히 메웠다. 수목보호틀 내부 토양은 빗물 침투와 공기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숨통’이다. 하상윤 기자

서울 마포구 연남동 거리의 한 플라타너스 근원부가 좁은 수목보호틀을 완전히 메웠다. 수목보호틀 내부 토양은 빗물 침투와 공기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숨통’이다. 하상윤 기자


플라타너스가 집중 분포한 마포구 연남동의 상업지역 일대를 살펴본 결과, 상당수 수목의 근원부(흙이랑 닿는 뿌리의 시작점)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목보호판과 보도블록은 나무의 성장에 따라 간격을 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줄기가 굵어지는 과정에서 금속이나 콘크리트가 수피와 형성층을 압박하고, 줄기 바깥쪽에 자리한 물관과 체관이 물리적으로 절단되거나 눌리게 된다. 그 결과 뿌리에서 흡수된 물과 잎에서 만들어진 영양분이 정상적으로 흐르지 못하게 되고 토양과 맞닿은 상부 조직은 비정상적으로 팽창한다. 그런 식으로 ‘목이 졸린’ 플라타너스들이 거리마다 널려 있었다. 나무의사 이재헌 씨는 “가로수 근원부 둘레에 자리한 보호틀은 땅속뿌리가 호흡하기 위한 최소한의 통로”라며 “뿌리를 보호해야 할 장치가 오히려 나무의 생존을 위협하는 역설이다”라고 설명했다.

관리 없이 방치된 수목보호판은 올가미로 변하고 결국 나무의 생존을 위협한다. 마포구 연남동 거리의 한 플라타너스가 돌처럼 굳어버린 토양 위에서 수목보호판에 의해 줄기가 조여진 채 고사했다. 하상윤 기자

관리 없이 방치된 수목보호판은 올가미로 변하고 결국 나무의 생존을 위협한다. 마포구 연남동 거리의 한 플라타너스가 돌처럼 굳어버린 토양 위에서 수목보호판에 의해 줄기가 조여진 채 고사했다. 하상윤 기자


도심의 수목보호틀과 수목보호판은 가로수에 인접한 토양이 보행자나 차량의 하중에 눌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표토에 답압이 누적되면 미세한 토양 입자들 사이의 공극이 사라져, 물과 산소가 뿌리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나무뿌리 위를 덮은 이 얇은 금속판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빗물과 공기가 토양 속으로 스며드는 통로를 지켜주는 완충 지대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일대 플라타너스들의 수목보호틀 내부 토양의 경도는 측정이 불가할 정도로 단단한 상태였다. 수목보호틀 없이 오래도록 방치된 결과다. 수목보호틀은 가로수에 인접한 토양 위로 가해지는 답압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표토에 답압이 누적되면 미세한 토양 입자들 사이의 공극이 사라져, 물과 산소가 뿌리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하상윤 기자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일대 플라타너스들의 수목보호틀 내부 토양의 경도는 측정이 불가할 정도로 단단한 상태였다. 수목보호틀 없이 오래도록 방치된 결과다. 수목보호틀은 가로수에 인접한 토양 위로 가해지는 답압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표토에 답압이 누적되면 미세한 토양 입자들 사이의 공극이 사라져, 물과 산소가 뿌리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하상윤 기자


따라서 노출된 토양이 경화되지 않도록 유지하고, 나무의 직경이 커지는 만큼 보호틀을 넓혀주는 것이 가로수 관리의 핵심이다. 그러나 연남동 거리에서 마주한 플라타너스 대부분은 나무의 부피에 비해 현저히 좁은 보호틀 안에 간신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과거 죄인을 신문할 때 쓰던 형틀을 떠올리게 했다. 보호판 자체가 사라진 경우도 허다했다. 나무 주위로 작게 남아 있는 토양마저도 이미 돌처럼 굳어 있었고, 보도블록과 금속판이 줄기 깊숙이 파고든 경우도 흔했다. 그렇게 숨통이 막힌 나무들 중 몇몇은 결국 고사해, 인도 위에 그루터기만 남아 있었다.

왼쪽 사진은 과도하게 가지가 잘려 있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거리의 플라타너스. 오른쪽 사진은 약 1km 떨어진 서대문구 연희동 거리의 플라타너스로, 본래 수형대로 건강하게 자라난 모습이다. 하상윤 기자

왼쪽 사진은 과도하게 가지가 잘려 있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거리의 플라타너스. 오른쪽 사진은 약 1km 떨어진 서대문구 연희동 거리의 플라타너스로, 본래 수형대로 건강하게 자라난 모습이다. 하상윤 기자


왼쪽 사진은 과도하게 가지가 잘려 있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거리의 플라타너스. 오른쪽 사진은 약 1km 떨어진 서대문구 연희동 거리의 플라타너스로, 본래 수형대로 건강하게 자라난 모습이다. 하상윤 기자

왼쪽 사진은 과도하게 가지가 잘려 있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거리의 플라타너스. 오른쪽 사진은 약 1km 떨어진 서대문구 연희동 거리의 플라타너스로, 본래 수형대로 건강하게 자라난 모습이다. 하상윤 기자


서울 마포구 연남동 거리의 플라타너스 수목보호판 위로 음식물 쓰레기통이 놓여 있다. 오른쪽 사진은 약 1km 떨어진 서대문구 연희동 거리의 플라타너스 모습으로, 보호틀 내부에 초본류를 식재해 토양 위 답압을 억제함으로써 통기와 투수가 유지되도록 했다. 하상윤 기자

서울 마포구 연남동 거리의 플라타너스 수목보호판 위로 음식물 쓰레기통이 놓여 있다. 오른쪽 사진은 약 1km 떨어진 서대문구 연희동 거리의 플라타너스 모습으로, 보호틀 내부에 초본류를 식재해 토양 위 답압을 억제함으로써 통기와 투수가 유지되도록 했다. 하상윤 기자


수관부로 시선을 옮기자, 상황은 더욱 참혹했다. 대부분 플라타너스는 벌목에 가까운 수준으로 가지가 잘려 있었다. 이러한 강전정은 식물에게 고문에 가까운 행위다. 광합성 기관이 집중돼 있는 잎은 나무의 에너지 공장 역할을 하는데, 강전정으로 수관 대부분을 잘라내 버리면 나무는 광합성 기능을 상실하고 뿌리로 내려보낼 영양분이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비유하자면 나무의 위장을 도려내는 것과 같다. 또한 커다란 절단 부위는 부패균과 해충이 침입하는 문이 되면서 면역을 극도로 떨어트린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거리의 플라타너스 수관부 모습. 하나같이 강전정에 의해 가지 대부분이 잘려나간 상태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거리의 플라타너스 수관부 모습. 하나같이 강전정에 의해 가지 대부분이 잘려나간 상태다.


국제수목학회의 수목관리 가이드라인은 전정 비중을 부피의 25% 이내로 제한한다. 과도한 가지치기가 나무의 생명을 단축할 뿐만 아니라 보행자에게도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엄태원 숲복원생태연구소 소장은 “가로수는 도심이라는 최악의 생장 환경 속에서도 굳건히 버티며 인간에게 쉼과 그늘, 각종 생태적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며 “나무가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였다면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할 수 있었을 텐데, 낙인을 찍고 잘라버릴 궁리부터 하는 행정의 태도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편집자주

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하상윤 기자 jonyyun@hankookilbo.com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브리지트 바르도 별세
    브리지트 바르도 별세
  2. 2한학자 통일교 조사
    한학자 통일교 조사
  3. 3박근형 이순재 별세
    박근형 이순재 별세
  4. 4김종국 위장 결혼 의혹
    김종국 위장 결혼 의혹
  5. 5손흥민 리더십
    손흥민 리더십

한국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