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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안 써도 좋을 이야기 좇아 우주 끝으로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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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에프(SF) 작가 김보영. 1990년대 말 그래픽 디자이너로 취업한 게임회사에서 게임 시나리오를 쓰게 된 뒤 다시 창작에 매진하게 됐다고 작가는 회고한다. 작가 제공

에스에프(SF) 작가 김보영. 1990년대 말 그래픽 디자이너로 취업한 게임회사에서 게임 시나리오를 쓰게 된 뒤 다시 창작에 매진하게 됐다고 작가는 회고한다. 작가 제공


기억나지 않는 어릴 때부터 뭔가를 썼다. 쓸 수 없을 때는 몽상을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즐길 것이 많지 않았다. 읽을 것은 스스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재미난 것이 많았다면 독서가가 되었겠지만 그러지 못해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문학의 유입 없이 쏟아져나오는 내 창작은 소꿉놀이 같은 것이었고, 체계도 규칙도 없었다. 십 대를 넘기면서 나는 내가 출간도 못할 괴상한 이야기만 짓고 있다고 느꼈고, 그러므로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참 이상한 상태였다. 쓰는 것 말고는 하고 싶은 것이 없는데 그것으로 먹고살리라는 기대가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사람들이 무엇을 얻고자 영화나 책을 보는 것이 아니듯이 나도 무엇을 얻고자 창작을 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러다 열아홉 이후로 갑자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 유일한 즐거움이 한순간에 떠나간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종이만 들여다보다 한 줄도 못 쓴 채 날을 새곤 했다.



결국 글은 내 길이 아니었구나 싶어 마음을 내려놓았다. 스물셋에 그나마 창작에 가까운 직업인 게임을 택했다. 당시 게임은 지금처럼 큰 산업이 아니었고, 가난한 인디 밴드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뭘 만든다는 것이 좋았다. 글을 포기했기에 그래픽 디자이너를 택했지만, 회사에 시나리오를 쓸 사람이 없어 다시 쓰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시나리오를 쓴 첫 게임이 ‘씰’(Seal, 2000)이다. 세상 형편없는 이야기를 내놓았겠거니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놀랍게도 출시일부터 찬사가 쏟아졌다. 이제껏 소설로 받은 사랑을 다 합쳐도 그때 받은 사랑에 미치지 않을 것이다. 몇년이 지나도록 팬아트와 팬픽이 쏟아졌다.



시나리오를 썼으니, 소설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여전히 써지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나이가 50이 넘으면 단편 하나쯤 쓸 수도 있겠지…’ 하고 자신을 다독이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밤새도록 울다가 새벽녘에 깨달았다. “이렇게 글을 좋아하는데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날부터 나는 나오지 않는 글을 우격다짐으로 썼다. 단편 하나를 수십번 다시 썼다. 출간할 생각이 없으니 완성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쓴 첫 단편은 미련 없이 내버렸고, 결말에서 떠올린 이야기로 중편 ‘촉각의 경험’을 썼다. 마찬가지로 하염없이 새로 썼다.



그러다가 문득 ‘만족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 소설의 결말이 떠올랐을 때 새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것이 중편 ‘다섯 번째 감각’이었고, 마찬가지로 ‘만족한다’는 답이 올 때까지 무한히 새로 썼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책 한권 분량의 연작 단편집을 만들자고 마음먹었다. 평생 단편 한편만 써도 좋다는 생각이 평생 한권만 쓰자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나는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에 글을 계속 고치고 다시 쓰며 책을 완성해 나갔다. 마지막 4부작 연작 단편 ‘미래로 가는 사람들’은 이제 그만 소설에 대한 갈망을 끊어내고 싶어서 쓴 글이다. 쓰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는 채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문학적인 고뇌는 순문학 작가에게만 허용되는 것만 같았고, 내 열망은 놀림거리일 뿐이라는 생각에 더욱 고독했다. 다 쓰면 더는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좋을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그 이야기는 세상이 끝나고 인류는 사라지고 우주도 종말을 맞이하고, 그 끝나감 속에서 우주의 끝을 향해 끝없이 가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다 마치면 갈망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끝자락에서 세상이 다시 시작되었고, 새 이야기가 떠올랐다.



작가 김보영의 첫 책 ‘멀리 가는 이야기’(환상 문학 웹진 ‘거울’, 2008)

작가 김보영의 첫 책 ‘멀리 가는 이야기’(환상 문학 웹진 ‘거울’, 2008)


이것이 내 첫 단편선 ‘멀리 가는 이야기’다. 나는 2004년 제1회 ‘과학기술 창작문예’에 이미 써 두었던 ‘촉각의 경험’을 제출해 데뷔했다. 책 한권 분량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출간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당시에는 해외 에스에프(SF)는 조금씩 나와도 한국 작가의 SF를 낼 길은 난망했으니, 내 비관적인 전망이 그렇게까지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었다. 책은 2005년 ‘북토피아’에서 전자책으로, 2008년에 환상 문학 웹진 ‘거울’에서 인디 출간으로 내었고, 그 후 2010년 ‘행복한책읽기’에서 정식으로 출간했다. 언제를 첫 출간으로 볼지는 애매하지만, 직접 표지를 그리고 편집했고, 박성환 작가님이 삽화를 그려주시고 은림 작가님이 판매해 주셨던 2008년 거울 판본을 첫 출간으로 여긴다.



수록 작품은 ‘촉각의 경험’, ‘다섯 번째 감각’, ‘우수한 유전자’, ‘종의 기원’ 1, 2부, ‘미래로 가는 사람들’ 기, 승, 전, 합이었고, 이들은 지금은 해체되어 여기저기 나뉘어 있다.



김보영 작가





그리고 다음 책들















다섯 번째 감각



‘촉각의 경험’, ‘다섯 번째 감각’, ‘우수한 유전자’가 수록되어 있다. 내 초기 걸작선으로 광고하고 있지만 단순한 광고 문구고, 다른 단행본으로 묶이지 않은 초기 단편들을 모두 모아 만든 단편집이다. 하지만 그만큼 오래 걸려 쓴 작품들이 실려 있다.



아작(2022)





종의 기원담



2005년에 완성한 ‘종의 기원’ 1·2부에 더해, 2023년에 마지막 3부를 써서 3부작 장편으로 완성했다. 3부는 집필 제안을 받은 지 6년이 지나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책 중 가장 긴 세월이 담겼기에, 내게 가장 의미 있는 책을 꼽으라고 할 때는 이 책을 말하곤 한다.



아작(2023)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



지인의 프러포즈 용도로 써서 선물했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그 속편 ‘당신에게 가고 있어’는 앞서 썼던 ‘미래로 가는 사람들’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프리퀄 소설들이다. 그러면서 ‘미래로 가는 사람들’ 4부작이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에 묶이게 되었다.



새파란상상(2020)





고래눈이 내리다



2025년에 낸 가장 최신작 소설집이다. 주로 2020년에서 2025년 사이에 쓴 단편들을 모았다. 이제는 출간할 수 없다는 낙담도 작가가 될 수 없다는 비관도 없다. 돌이켜보면 이런 나날이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



래빗홀(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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