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31일 경주에서 가진 양국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교도 연합뉴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가 첫 정상회담에서 각각 일본의 식민 침략과 중국의 인권 문제 등 상대국의 민감한 문제를 거론했다. 양국의 '전략적 호혜 관계' 증진을 강조하면서도, 서로에게 불편한 주제를 피하지 않은 것이다.
시 주석은 31일 경주에서 열린 아세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 도중에 가진 다카이치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을 반성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담화를 거론하며 일본은 “침략 역사에 대해 반성해야만 한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시 주석은 “두 나라는 서로에게 위협이 아닌 협력하는 동반자이어야만 한다”면서도 “우리는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고 희생당한 국가들에게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폭넓게 증진시켜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은 또 “중-일 관계의 장기적이고, 건강하고 안정된 발전은 양국민과 국제사회의 공통된 기대를 충족한다”며 일본의 새로운 내각이 중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수립하고 평화, 우호, 협력의 방향을 유지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이 거론한 무라야마 담화는 지난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총리가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을 반성하는 일본의 과거사 반성 성명이었다. 전후 일본 총리가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 등을 “침략”이라고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반성한 것은 처음이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 17일 사망해, 그의 담화가 새삼 주목받았다.
시 주석은 이날 회담을 시작하는 연설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취임에 축하 인사를 건네지 않았고 일반적인 메시지만 전했다. 또 그는 대만 문제를 간접적으로 제기하며 다카이치 총리를 압박했다.
시 주석은 “중국은 일본과 ‘4대 정치문건’이 세운 원칙과 방향 아래에서 양자 관계의 정치적 기초를 함께 지키고, 전략적 호혜 관계를 추진할 뜻이 있다”며 “새 시대 요구에 맞는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중-일 관계를 쌓아가는 데 힘쓸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4대 정치문건’은 1972년 수교 때 발표한 ‘중-일 공동성명’, 1978년 ‘중-일 평화우호조약’, 1998년 ‘중-일 평화와 발전의 우호협력 동반자 관계 수립 노력을 위한 공동선언’, 2008년 ‘중-일 전략적 호혜관계 전면 추진에 관한 공동성명’이다. 이 문건들은 대만을 중국 영토의 일부로 보는 ‘하나의 중국’ 원칙과 함께 주권·영토 완전성 존중, 패권 추구 반대 등을 뼈대로 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홍콩 등에서의 인권 문제 등을 꺼냈고, 일본과 중국이 영유권을 다투는 센카쿠 열도 등 동중국해 상황에 대한 우려도 전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모두 발언에서 “중국은 일본에 중요한 이웃 나라며 양국이 지역과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다”며 “전략적 상호 호혜 관계의 포괄적 추진과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 구축이라는 큰 방향성을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양국 사이에 여러 현안과 과제가 있지만 (문제를) 줄이고 이해와 협력을 늘려 구체적 성과를 내고 싶다”며 “저는 신념과 실행력을 정치 신조로 삼아왔다”며 “시 주석과 솔직하게 대화를 거듭하며 정상 간 관계도 깊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회담 뒤 “(영토 분쟁이 있는) 센카쿠 열도를 포함한 동중국해 문제와 희토류 등의 수출 관리(규제) 문제, 중국 체류 일본인의 안전 보장 등을 요청했다”며 “중국의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행동, 홍콩이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의 (인권 탄압) 상황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자리에서는 일본인 북한 피랍 문제를 포함한 북한 정세 등에 대해서도 의견도 교환됐다고 다카이치 총리는 전했다.
이날 회담에서 일본 정부는 동·남중국해 해양 진출에 관한 우려, 중국 내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관련 안전 확보 요구 등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본은 중국 정부에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빠른 수입 재개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에 대해 “중국에 일본산 수산물과 소고기 수입 재개 등 문제에 대해 긍정적 대응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민감한 주제가 거론되는 등 '신경전'을 벌이면서도, 두 정상은 이번 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시 주석과의 회담이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상당히 충실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며 “우선 일-중 사이에 전략적 호혜 관계와 건설적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큰 방침(을 확인했다)”고 했다. 전략적 호혜관계라는 표현은 2008년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도쿄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처음 쓰였다. 그는 또 “
시 주석과 나는 효과적인 위기관리 및 국방 당국 사이의 소통의 중요성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
시 주석도 회담에서 전략적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를 촉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카이치 총리와 함께 중일 관계를 올바른 궤도에서 발전시키겠다”며 다카이치 내각이 “중일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인식을 표명했다.
이날 회담에 앞서, 중국 쪽은 과거사와 영토 문제에서 우익 성향을 띠어온 다카이치 총리를 경계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 취임 때 리창 총리가 축하 전보를 보냈는데, 이전 총리들에게 시진핑 주석이 직접 축전을 보냈던 것과 다른 태도로 주목받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 쪽이 다카이치 총리 취임 뒤 언행을 살피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양국 외무장관들도 하루 전 전화로 회담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장관은 이날 왕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에게 “중국은 일본에 중요한 이웃 나라며, 다카이치 총리는 일·중 관계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그는 “서로 차이점을 적절히 조율하고, 건설적이며 안정적인 전략적 호혜 관계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왕 부장은 “일본과 전략적 상호 호혜관계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고 싶다”며 “고위급 교류는 관계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답했다.
도쿄 베이징/홍석재, 이정연 특파원, 정의길 선임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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