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갑’ 젠슨황 “GPU 판매가 선물”…삼성·SK·현대 ‘엔비디아 옴니버스’ 다이브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31일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특별 세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미국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31일 한국에서 꺼내든 ‘선물꾸러미’는 자사의 인공지능(AI) 칩이었다. 세계적으로 공급 부족을 빚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10여조원어치를 한국 정부와 기업에 팔겠다는 것이다.

대대적인 한국 내 현지 투자가 아닌 자사 제품 판매가 ‘선물’이 될 수 있는 건, 인공지능 칩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는 황 최고경영자의 ‘슈퍼 갑’ 위상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민간 기업들은 엔비디아 칩과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전면 도입해 제조업 혁신을 위한 피지컬(물리적) 인공지능 개발·활용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계획이다.

이날 엔비디아는 젠슨 황 최고경영자 방한을 계기로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에스케이(SK)그룹·현대자동차그룹·네이버 등 민간 기업에 지피유 26만장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내년부터 오는 2030년까지 공급되는 물량으로, 전체 구매금액은 10여조원대에 이른다. 확보한 물량은 정부 5만장, 삼성전자·에스케이·현대차 각 5만장, 네이버 6만장 등이다.

황 최고경영자는 이날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삼성·에스케이 등은) 치맥(치킨+맥주) 형제들”이라며 “이 기업들은 내년 엔비디아의 수천억달러 규모의 성장을 뒷받침할 핵심 파트너”라고 말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31일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 원화홀에서 열린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경주 엔비디아 기자간담회에서 빼빼로 과자를 먹다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엔비디아 지피유는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병렬 연산에 특화돼 인공지능 모델의 학습·추론 등에 필수적이다. 현재 국내 민·관이 보유 중인 엔비디아 지피유 물량은 10만장을 훨씬 밑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기업들의 엔비디아 칩 구매 등 인공지능 인프라 투자 부담을 고려해 세금 감면 정책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에 확보한 물량은 한국의 독자 인공지능 모델 개발과 국내 제조업에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피지컬 인공지능’ 활용 등에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피지컬 인공지능이란 인공지능이 실제 물리 세계를 인식·분석·판단해 구동하는 것으로, 로봇·자율주행차·스마트 공장 등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제조업이 인공지능 기술을 발판 삼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셈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31일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기자들에게 빼빼로를 나눠주고 있다. 유하영 기자

황 최고경영자도 간담회에서 “한국은 로봇을 직접 만들고, 그 로봇을 공장에 활용할 수 있는 시장도 갖고 있다”면서 “한국의 피지컬 인공지능과 로보틱스 산업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각 기업별 지피유 활용 방향은 약간 다르다. 삼성전자는 기존 국내·외 반도체 제조 공장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해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인공지능 공장(팩토리)’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현대차그룹은 자체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하고 공정에 엔비디아 칩과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전면 도입해 자율주행차 기술 및 로봇 개발 등에 가속 페달을 밟겠단 계획이다. 에스케이그룹은 미국 아마존 웹서비스(AWS)과 오는 2027년까지 울산에 조성 중인 국내 최대 규모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에 엔비디아 칩을 대거 집어넣고, 제조업에 특화한 인공지능 클라우드 서비스를 구축할 방침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현대차그룹 모두 엔비디아 칩에 기반한 이 회사의 ‘옴니버스 플랫폼’을 적극 도입하기로 했다. 옴니버스는 인공지능이 단순 데이터 학습을 통한 챗봇 수준을 넘어, 현실 세계의 물리적 법칙 및 인과 관계 등을 학습해 향후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예측하는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WFM)의 토대가 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다. 로봇·자율주행차 등이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을 체험할 수 있는 가상현실인 셈인데, 이는 로봇·자율주행차 등 피지컬 인공지능 구현의 핵심이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생태계에 발을 깊숙히 담그는 셈이다.

다만 황 최고경영자는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칩에 탑재되는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의 삼성전자·에스케이하이닉스 공급 성사 여부엔 말을 아꼈다. 그는 간담회에서 엔비디아가 조만간 출시 예정인 차세대 인공지능 칩 ‘루빈’을 두고서만 “내년 하반기 생산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 중이며, 변동 없다”고 했다. 루빈엔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가 들어간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채반석 기자 chaibs@hani.co.kr 유하영 기자 y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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