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 |
2022년 출범한 국내 최대 미술 시장 ‘프리즈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는 에곤 실레(1890~1918)였다.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28세에 요절한 이 오스트리아 화가 작품 40여 점이 서울 코엑스에 전시됐다. 20~30대 젊은 관객은 “에곤 실레의 작품을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첫 기회”라며 열광했다. 소셜미디어엔 관람 후기와 사진이 여럿 올라왔다.(2022년 9월 24일 자 B5면)
에곤 실레 인기. 2022년 9월 24일자 B5면 |
에곤 실레 인기는 2016년 12월 국내에 개봉한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이 불을 지폈다. 관객 10명 중 7명이 20~30대, 그중에서도 20대 여성이 이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그룹으로 나타났다.
“유럽으로 미술관 여행을 떠나는 젊은 세대에게 에곤 실레는 낯설지 않아요. 빈으로 클림트를 보러 갔다가 에곤 실레에게 반해 돌아왔다는 젊은이들이 많지요.”
‘셀카’에 익숙한 세대인 2030에게 어필하는 작가란 분석도 있다. 필터를 써서 자신의 얼굴을 보정하는 행위는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정서를 나타내는데, 실레의 기괴한 자화상은 필터 이전의 민낯을 대신 드러내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에곤 실레는 스승 구스타프 클림트와 함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로 많은 명작을 남겼다. 인간 내면에 웅크린 욕망을 기괴하고 뒤틀린 인체 묘사와 음산한 색감으로 표현한 그림은 젊은 취향을 파고들었다. 이주헌 미술 평론가는 “염세와 반항이 바탕에 깔린 에곤 실레의 그림은 이른바 ‘헬조선’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기성 체제에 대해 갖는 불신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2017년 1월 6일 자 A20면)
2012년 3월 28일자 A35면 |
에곤 실레는 왜 그렇게 비뚤어진 몸을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했을까. 우정아 포스텍 교수는 “불편한 자세로 선 채 불안에 가득한 눈으로 정면을 쏘아보는 실레의 왜곡된 자화상은 본능에 이끌려 성과 자위에 탐닉했던 스스로에 대한 처벌과 자책의 증거”라고 했다. 임신 여섯 달이던 아내가 스페인 독감에 걸려 먼저 떠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면 그림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아기가 태어나는 걸 볼 수 있었다면 그토록 누추하기 그지없던 자기 몸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기적에 감탄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아마도 안온하고 부드러운 실레의 자화상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2012년 3월 28일 자 A35면)
2023년 4월 20일자 A29면. |
실레가 특이한 질병을 앓았을 수 있다는 진단도 있다. 근육의 비정상적 수축으로 손발이 꼬인다거나 과도하게 뻣뻣해지는 운동 이상 질환인 근긴장이상증이다.
“의학계에서는 그 뒤틀린 자세를 두고 실레가 근긴장이상증(dystonia)을 앓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 자세가 근긴장이상증 환자에게서 흔히 보이기 때문이다.”(2023년 4월 20일 자 A29면)
실레의 그림은 문학 작품 표지로도 사용됐다.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1912)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 ‘네 그루 나무’는 한강의 ‘채식주의자’ 표지 그림으로 실렸다.
에곤 실레의 그림을 보려면 오스트리아 빈 레오폴트 미술관에 가야 한다. 실레 작품 200여 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체코 프라하 남쪽 체스키크룸로프에는 ‘에곤 실레 아트센터’가 있다. 작품은 모두 복제품이지만 미술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다. 실레 어머니의 고향이다.
실레는 어머니와 불화했지만 이 도시를 사랑했다. 1911년 이곳 작업실에서 평온함을 얻었지만, 기괴한 나체 그림을 그리는 그를 불온하게 바라보는 주민들 시선에 곧 도시를 떠나야 했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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