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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과 도금 사이…‘미 공군 1호기’ 타고 떠난 무궁화대훈장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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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29일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공식 환영식에서 무궁화 대훈장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29일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공식 환영식에서 무궁화 대훈장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박 대통령의 이번 방독은 여러 면에서 거창한 기록을 세우고 있어 화젯거리. 우선 뤼브케 서독 대통령 부처에게 줄 한국 최고의 무궁화대훈장을 비롯하여 40여개의 각종 훈장, 박 대통령의 흉상을 새긴 5백개의 기념메달 등은 가히 훈장외교란 말을 낳을 정도이고….”(동아일보)



1964년 12월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일행의 트렁크에는 무궁화대훈장, 건국공로훈장, 일등수교훈장 등 훈장 42개가 실려 있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한국 대통령(이승만·윤보선·박정희)에게만 수여됐던 무궁화대훈장이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하인리히 뤼브케 서독 대통령 부부에게 수여됐다. 당시 국내 언론은 “사상 초유 매머드 훈장외교”(경향신문)라고 평가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박 대통령에게 독일 연방 최고훈장인 공로십자훈장을 수여했다. 한국은 간호사와 광부를 서독에 보냈고, 서독은 한국에 차관을 제공했다.



60여년이 지난 2025년 10월29일 경주에서 ‘훈장외교’가 다시 꽃을 피웠다. 주인공은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했다. 미 대통령으로는 처음이었다. 곧바로 이어진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석 달을 끌어온 한-미 관세협상 타결에 이어 핵추진 잠수함 건조라는 깜짝 성과까지 거뒀다.



반면 미국 매체들은 한국 대통령이 금빛 번쩍이는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하고, 신라 황금 왕관(복제품)을 선물한 것에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미 전역에서 ‘왕은 없다’(No kings) 반 트럼프 시위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금을 좋아하고 자신을 군주처럼 여기는 것을 한국 정부가 공략했다”(타임)는 식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가 열린 경주를 두고 “국제공항도 없고 고급호텔도 부족하다”고 비판했던 뉴욕타임스도 ‘왕은 없다’ 시위를 언급하며 무궁화대훈장·신라 왕관 소식을 전했다.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이는 무역전쟁에 대한 근본적 성찰보다는 자국 정치 상황에 더 무게를 둔 기사였다.



무궁화대훈장을 받는 첫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가 아닐 수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1월 “정부 소식통이 언명한 바에 의하면 아이젠하워 미 차기 대통령 내방 시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하기로 했다”(경향신문)는 보도가 나왔다. 다만 실제 수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외국 정상 훈장은 통상 도금으로 제작





우리나라에는 12종류의 훈장이 있다. 무궁화대훈장,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수교훈장, 산업훈장, 새마을훈장, 문화훈장, 체육훈장, 과학기술훈장 등이다. 최고훈장인 무궁화대훈장을 제외한 나머지 훈장은 다시 1∼5등급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장(1등급), 대통령장(2등급), 독립장(3등급), 애국장(4등급), 애족장(5등급)이 있다.



훈장·포장 수여 등 서훈을 규정한 상훈법 시행령은 무궁화대훈장의 모양, 크기, 색상, 재질, 무게 등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무궁화대훈장은 전체 훈장 가운데 유일하게 순금을 사용해 제작한다. 어깨에 거는 정장(Badge)은 금 153g, 은 89g, 루비, 자수정으로 만든다. 오른쪽 가슴에 다는 부장(Star)은 금 216.5g, 은 126.5g, 루비, 자수정을, 왼쪽 옷깃에 다는 금장(Lapel Badge)에는 금 12g, 은, 7g, 루비가 쓰인다. 목에 거는 경식장(Collar Decoration)에는 가장 많은 금이 들어간다. 금 335.5g, 은 195g, 루비로 제작한다. 무궁화대훈장 하나 만드는데 금 717g(191돈), 은 422.5g(112돈)이 필요하다. 여성용 무궁화대훈장은 남성용에 견줘 크기가 작아 제작에 쓰이는 귀금속 양도 적다. 금 455.5g, 은 266g 정도가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훈장은 한국조폐공사가 만든다. 무궁화대훈장의 경우 제작 기간은 2개월 정도다. 제작 당시 금 시세에 따라 비용이 책정된다. 최근 금값이 급등한 탓에무궁화대훈장의 금값만 1억3천만원(30일 기준)이 넘는 것으로 평가되며 화제가 됐다. 다만 상훈법 시행령은 ‘행정안전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다른 재료를 사용할 수 있다’고 단서 조항을 두고 있다. 순금 대신 순은을 금도금하는 방식으로 제작할 수 있는 것이다. 통상 외국 정상에게 수여하는 무궁화대훈장은 금도금 방식으로 제작된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여된 무궁화대훈장도 금도금으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수여한 무궁화대훈장증. 대통령실 제공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수여한 무궁화대훈장증. 대통령실 제공




박정희 대통령 때는 일본에 제작 맡기기도





훈장은 소량 다품종에 기계화가 불가능하다. 2010년 국정감사 때는 한국조폐공사 훈장사업 적자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훈장 제작은 1949년부터 정부 지정 훈장제작소인 ‘정일사’가 맡았다. 1985년에 한국조폐공사로 훈장 제작 업무가 넘어갔다. 평생 30여만개 훈장을 만들었던 정일사의 사장은 훈장을 만든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당시 인터뷰에서 “가장 격이 높은 무궁화대훈장 만들기가 가장 어렵다. 5∼6명이 열흘씩 매달려 정교하게 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1967년에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외국 정상에게 수여할 무궁화대훈장 5세트를 1만8480달러를 주고 일본에 주문 제작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나라 체면이 뭐가 되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최고훈장을 외국에서, 특히 일본에서 만들기로 결정한 데 대해 총무처 당국자는 ‘국내에서는 좋은 제품을 만들 수가 없을 뿐더러 시간적으로도 제때에 만들 수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동아일보)고 전했다.



1981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전두환과 부인 이순자에게도 무궁화대훈장이 수여됐다. 국무회의에서는 “오직 위국충정의 일념으로 불의와 안일을 배격…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주도…민주복지국가 건설에 공헌”(전두환) “파사현정의 정의감을 절대적 가치관으로 삼고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선택하도록 대통령을 충실히 내조”(이순자)를 이유로 서훈을 의결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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