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중국인 단체관광객에 대한 무비자 입국 조치가 시행된 지 한 달째다. 서울 명동과 광화문, 동대문 길가에 전세버스 여러 대가 일렬로 줄을 섰다. 거리 곳곳에선 높게 깃발을 든 가이드가 앞장서고, 관광객들은 그 뒤를 부지런히 따른다.
면세점과 백화점, 식당가에선 외국인 손님을 위한 안내판이 부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발길이 줄었던 거리와 매장은 다시 북적거리며 온기가 돌고 있다.
동시에 명동과 대림동 일대에는 혐중(중국 혐오) 시위가 부활했다. 곳곳에서 “차이나 아웃(China Out)”, “무비자 입국 반대”, “짱깨(중국인을 비하하는 표현)는 돌아가라” 등의 구호가 울려 퍼진다. ‘중국인 출입 금지’ 팻말을 내건 상점도 등장했다. 이런 분위기에 놀란 대만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대만 사람이에요(I’m from Taiwan)’ 문구와 함께 대만 국기가 그려진 배지가 유행할 정도다.
중국에 갖는 부정적인 감정의 배경은 충분히 이해된다. 독재 정치 체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의 경제 보복, 봄철마다 날아오는 중국발 미세먼지, 지난한 국경 분쟁과 역사 왜곡, 일부 중국인의 무질서한 행동 등이 반감을 키웠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일부 시장은 이 같은 감정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 적자가 이어지던 면세 업계는 간만의 호황을 맞았다.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은 지난달 29일 무비자 시행 이후 이달 26일까지 중국인 방문객이 전년 동기 대비 약 90%, 매출은 40% 늘었다. 방문객 중 중국인 비율은 77%, 매출 비율은 86%에 달했다. 롯데면세점도 같은 기간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17% 늘었고, 중국인 매출 비율은 60%를 넘어섰다.
주요 상권도 되살아났다. 명동 지역은 팬데믹 시기 공실률이 50%를 넘었지만, 이제 소규모 상가와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모두 한 자릿수대로 떨어졌다. 식당·카페 등 먹거리 위주로만 구성됐던 상권도 각종 숙박 시설과 의료 시설, 소매점, 식음료 매장이 골고루 들어서며 체류형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무비자 입국 조치로 내년 상반기까지 중국인 관광객 100만명 이상이 추가 입국할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은행은 이로 인해 관광 수입이 약 2조5600억원 늘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08%포인트(P) 오를 것으로 추산했다.
물론 중국은 불편한 국가다. 하지만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기도 하다. 한국은 중국에 가장 많은 물건을 수출하고, 또 가장 많이 수입한다. 화장품·패션·콘텐츠 등 이른바 ‘케이(K)소프트파워’가 수익을 내는 무대도 중국이다. 한국 관광의 가장 큰 외화 수입처이자, 가장 강력한 소비 집단 역시 중국인 관광객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맞아 한국을 찾았다. 2014년 이후 11년 만의 방한이다. 정부와 관광업계는 한국 관광 재도약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중국인들은 지금도 조용히 세계 곳곳에서 지갑을 열고 있다. 어차피 열릴 지갑이라면, 한국에서는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열 수 있는 분위기가 됐으면 한다. 혐중이 당장은 속을 시원하게 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
정재훤 기자(hw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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