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도 인천공항서 철수…'전략'일까 '모험'일까

위약금 감수하고 DF2 면세점 철수 결정
수천억 손실 사전 차단…기업 존속 우려도
조만간 재입찰…임대료 체계 근본적 개선 필요

신세계면세점이 인천국제공항 T2에서 운영 중인 화장품·향수 매장. / 사진=신세계디에프

신세계면세점이 인천국제공항 제1·2터미널 DF2(화장품·향수·주류·담배) 구역에서 손을 뗀다. 호텔신라의 신라면세점에 이어 또 다른 대기업마저 인천공항에서 철수를 선택했다. 국내 면세시장이 과거와 같이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규모 적자라도 끊어내기 위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신세계그룹의 면세 사업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세계마저

신세계디에프는 30일 이사회를 열고 인천공항 DF2 영업을 2026년 4월 27일 종료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신세계디에프는 2023년 이 구역 사업자로 선정돼 10년간 운영하기로 돼있었다.

신세계디에프 측은 "운영을 지속하기에는 경영상 손실이 너무 큰 상황"이라며 "부득이하게 사업권을 반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고환율, 경기 둔화, 주고객의 구매력 감소 및 소비 패턴 변화 등 면세 시장에 부정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객단가 상승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인천공항 임대료 인하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신세계면세점이 계약 중도 해지로 내야 하는 위약금은 19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앞서 신라면세점도 지난달 18일 비슷한 규모의 위약금을 내고 DF1 사업권을 반납하기로 했다.

신세계면세점이 인천국제공항 T2에서 운영 중인 화장품·향수 매장. / 사진=정혜인 기자 hij@

신세계면세점이 위약금을 각오하고 철수를 택한 것은 '지금이라도 나가지 않으면 손실이 더 커진다'는 계산 때문이다. 면세업계에서는 대기업 면세점들이 인천공항에서 매달 60억~80억원 가량의 적자를 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신세계면세점이 계약 종료 시점인 2033년까지 버틴다면 누적 손실은 수천억원대로 불어날 수밖에 없다. 위약금 규모가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지금 떠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신세계면세점은 인천공항 임대료 부담 탓에 손실을 내고 있다. 지난해 영업손실 197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선 데 이어 올 상반기에도 39억원의 적자를 냈다. 면세업계에서는 이석구 신세계디에프 신임 대표가 인천공항 철수라는 결단의 임무를 받고 취임한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신세계그룹은 지난달 26일 이석구 대표를 신세계디에프 대표로 선임한 바 있다.

수천억 적자 못 견딘다

신세계그룹의 면세 사업은 2012년 시작됐다. 신세계조선호텔(현 조선호텔앤드리조트)이 파라다이스면세점을 인수하면서다.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 있던 면세점이 신세계의 첫 면세점이 됐다. 2014년에는 김해공항에, 2015년 초에는 인천공항에 면세점을 열며 공항 사업도 시작했다.

신세계그룹이 면세사업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건 것은 2015년 신세계디에프를 신설하면서다. 당시 유통업계는 '면세점 대전'이 한창이었다. 정부가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대거 풀면서 주요 유통 대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였다. 신세계그룹은 이 면세점 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신설법인을 설립했다.

신세계디에프는 그해 7월 1차 면세점 대전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11월에는 워커힐을 밀어내고 사업권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 말에 진행된 입찰에서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위치한 센트럴시티를 내세워 두 번째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도 획득했다. 서울 강북과 강남 모두에서 면세점을 운영하게 되면서 단숨에 면세업계 3위로 도약했다.

그래픽=비즈워치

하지만 이런 성장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7년 중국 한한령 탓에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마저 터지며 하늘길이 막혔다. 신세계면세점뿐만 아니라 국내 면세시장 전체가 크게 위축됐다.

결국 신세계면세점은 강남점을 2021년 폐점했다. 올해 초에는 부산점도 문을 닫았다. 이번에 인천공항점 DF2까지 철수하게 되면 신세계면세점에 남은 매장은 명동 시내점과 인천공항 DF4(패션·잡화) 구역 두 곳만 남게 된다.

면세업계에서는 신세계면세점의 인천공항 철수 '결단'이 오히려 '악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세계면세점과 같은 이유로 인천공항 DF1 사업권을 반납한 호텔신라는 면세업 외에 호텔 사업도 영위하고 있다. 면세점 사업이 다소 축소되더라도 감당할 여력이 있다. 반면 신세계디에프는 면세업 전문 기업이다. 면세점 매장 수가 줄면 기업 존속 자체가 위협 받을 수밖에 없다.

신세계디에프 측은 이에 대해 "시내면세점인 명동점과 DF4(패션·잡화)에 역량을 집중해 체질 개선을 도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음 타자는

인천공항 면세구역에 두 개의 빈 자리가 생기면서 신규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재입찰이 이뤄지게 된다. 인천공항공사는 당초 연내 신라면세점이 반납한 DF1 구역 재입찰을 공고할 계획이었다. 신세계면세점이 연달아 철수를 결정한 만큼 두 구역의 재입찰이 함께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사업권을 반납한 구역은 화장품·향수·주류·담배 판매 구역이다. 패션·잡화보다 매출이 높아 면세점의 핵심으로 꼽힌다. 다만 재입찰에 참전할만한 여력을 갖춘 기업이 많지는 않다는 점이 문제다.

신라면세점이 인천국제공항 T1에서 운영 중인 DF1 구역 면세점. / 사진=호텔신라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는 롯데면세점이다. 롯데는 2023년 입찰에서 신라, 신세계에게 밀렸던 만큼 이번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글로벌 1위 면세기업인 중국 CDFG도 관심 대상이다. 2023년 입찰에 참여했다가 떨어진 CDFG는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재도전할 수 있다. 다만 국가 관문인 인천공항에 중국 자본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재입찰의 최대 관심사는 임대료다. 두 대기업이 백기를 들고 나간 만큼 이번엔 더 현실적인 수준에서 입찰가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사업권 경쟁이 치열해지면 또 다시 과열 양상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있다. 높은 임대료를 써내고 낙찰받은 뒤 버티지 못하는 '승자의 저주'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다. 2023년 입찰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입찰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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