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는 73세 때인 1981년 10월 11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강신표 정신문화연구원 교수와 대담에서 신라 임금 문무왕을 언급했다. 한국에 오기 전 ‘삼국유사’ 영역본을 읽었다고 했다.
“문무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시골을 돌아보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더군요.”(1981년 10월 13일 자 3면)
동양정신 배울 점 많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대담. 1981년 10월 13일자 3면 |
초청받은 나라에 대한 예의였을까? 30년 후 기사를 보면 접대성 발언만은 아니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는 2011년 방한해 소설가 이문열과 대담에서 레비스트로스가 말했다는 문무왕 이야기를 꺼냈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예전 일본에서 ‘인류학의 기원이 한국’이라고 강의하는 걸 들었다. 신라 문무왕이 친동생에게 백성들을 시찰한 뒤 보고하라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게 인류학 현장 조사가 아닌가.”(2011년 5월 24일 자 A25면)
레비스트로스는 ‘삼국유사’ 읽기와 한국 방문을 통해 ‘인류학의 기원’을 생각했다. 그는 내한 후 네 차례 학술회의를 가졌고, 20일부터 7박 8일간은 경주 양동마을·안동 하회마을과 통도사에 기거하면서 한국 전통도 경험했다. 대장간·외양간 등을 살펴보고 소시장도 방문했다. 통도사에선 새벽 예불에 참여하고 스님들과 공양(식사)도 함께했다. 당시 90세로 최고령 불교계 원로인 경봉 대선사와는 선문답을 나눴다.
레비스트로스의 한국 방문 7박8일. 1981년 10월 27일자 7면. |
경봉 스님: 극락에 오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여기에 왔는가요? (스님 거처가 극락암이었다.)
레비스트로스: 길은 없어도 하늘에서 인도되어 왔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한국 불교는) 일본 불교에 비해 아직 세속화·기업화가 덜 되어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그는 일본 불교에 영향을 받은 유럽의 선(禪)협회 고문직을 맡고 있었다. (1981년 10월 27일 자 7면)
레비스트로스는 27세 때인 1935년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 교수가 됐다. 이듬해 아마존 열대우림으로 들어가 토착 부족과 함께 생활하며 몇 달을 지냈다. 2년 뒤에는 아마존의 다른 부족 지역에 들어가 1년 넘게 함께 살면서 그들의 생활 풍습을 기록했다. 이때 연구를 바탕으로 1955년 ‘슬픈 열대’를 출간했다.
레비스트로스는 따뜻한 시선으로 원주민의 삶을 바라보면서 ‘문명’과 ‘야만’이라는 기존 관념은 서구의 오만이라고 지적했다. 80세 때 낸 회고록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에서도 “한 문화가 다른 문화권에 적용할 수 있는 절대 기준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각각의 문화는 자신의 문화 내에서는 우열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했다.
1999년 7월 1일자 18면. |
그는 다양한 현상 속에 숨겨진 ‘구조’를 찾으려고 했다. 1999년 조선일보 ‘20세기 사상을 찾아서’ 시리즈에 기고한 임봉길 강원대 교수는 “레비스트로스는 남북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방대한 신화를 네 권의 ‘신화론’을 통해 분석함으로써 인간 심층에 존재하는 문화 형성 원리, 즉 구조적 무의식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했다”면서 “차이성과 유사성의 관계를 통해 상징과 의미를 만들어내는 점에서 모든 인간은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서술했다.(1999년 7월 1일 자 18면)
레비스트로스는 2008년 11월 28일 100세 생일을 맞았다. 프랑스 정부는 기념 전시회와 학술 발표회를 열었고 방송은 12시간짜리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프랑스 최고 권위 학술 기관 아카데미프랑세즈는 축하 성명을 발표했다. 400년 아카데미프랑세즈 역사에서 100세 생일을 맞은 회원은 레비스트로스뿐이다. 한국에서도 레비스트로스 100세 기념 학술회의가 열렸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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