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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중…정치가 답하라 [홍성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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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자유대학’ 등이 주최한 반중국 집회 참가자들이 지난달 9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자유대학 유튜브 갈무리

보수단체 ‘자유대학’ 등이 주최한 반중국 집회 참가자들이 지난달 9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자유대학 유튜브 갈무리




홍성수 |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짱×! 북괴!” “중국인은 꺼져라.” 서울 자양동, 명동, 대림동, 구로, 경기도 안산 등에서 연일 혐중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혐중시위는 혐오가 확산되는 과정을 교과서처럼 보여주고 있다. 모든 혐오는 사실 왜곡과 가짜뉴스에 기반한다. 혐중시위도 부정선거 개입, 장기 매매, 흉악범죄, 건강보험 무임승차, 부동산 장악, 화재 배후 등 온갖 문제를 중국인들에게 덮어씌우고 있지만, 대부분 허무맹랑한 거짓이거나 지엽적인 문제를 과장한 것에 불과하다. 숫자가 등장하면 무언가 사실인 듯 보이지만 교묘한 사실 왜곡이다. 일례로 범죄 건수나 건강보험 부정수급자 중 중국인 숫자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주한 외국인 중 중국인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참고로 지난 3년간 산업재해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의 국적은 절반 이상이 한국계 중국인 또는 중국인이었다.



근거 없는 혐오는 방향을 잃고 헤매기 마련이다. 중국인의 건강보험 무임승차가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보건복지부 앞에 가서 대책 마련을 요구해야지, 왜 중국인 관광객이나 중국동포들을 향해 시위를 하는 걸까? 혐중집회에 나오는 여러 주장을 최대한 선의로 해석해도, 한-중 간 외교를 통해 풀 일이거나 아니면 한국 정부나 의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일 뿐, 자양동과 대림동의 중국동포 상인, 구로와 안산의 중국계 이주노동자, 명동의 중국 관광객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 그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외국 사례들을 보면 혐오 확산의 배후에는 늘 ‘정치’가 있었다. 혐오를 효과적으로 통제했던 모범 사례의 비밀도 정치의 힘이었고, 반대로 혐오의 확산을 부추긴 것도 정치였다. 혐오 확산의 키는 정치가 쥐고 있는 것이다. 혐오에 대한 정치의 개입은 교묘하고 전략적이다. 정치인들은 시위 현장의 험악한 구호를 직접 외치지 않는다. 대신 입법과 정책으로 포장하여 혐오를 조장하고 지원한다. 거리에서 “중국인은 꺼져라!”라고 외치면, 정치인들은 ‘중국인의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막겠다’고 화답하는 식이다. 혐오는 정치의 후원을 받을 때 크게 고무되고 폭력과 테러 등 극단으로 치닫곤 한다. 단언컨대 ‘중국인 3대 쇼핑 방지 3법’ 추진은 ‘쫓아내자’ ‘공격하라’는 구호보다 더 위험한 정치적 행동이다. 목적이 순수하지 않으니 일관성도 없다.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여 관광업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꾸준히 추진되어온 정책이었는데, 느닷없이 ‘간첩 면허증’이 되어버렸다.



집권여당의 책임도 있다. 시민사회가 혐오와 차별 문제에 대한 법적,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20년이 넘도록 정부나 국회 차원의 대응은 사실상 전무했다. 차별금지법 하나 제정하지 못하는 나라로 전락하는 사이, 혐중이 그 틈새를 치고 나온 것이다. 이제라도 대통령실과 여당 일부에서 혐중 문제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체계적인 전략도 없어 보이고, 당장 적용할 만한 법적 근거도 마땅치 않다. 중구난방으로 쏟아지는 대책들을 보면 환영할 만한 일인지가 헷갈릴 정도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법과 정책을 정비했더라면, 시민사회가 혐오와 차별에 대응해야 한다고 그렇게 간절하게 호소할 때 조금이라도 응답했더라면, 이렇게 우왕좌왕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급기야 서울의 한 카페가 “노 차이니즈 존”을 선언했다. 혐중은 이제 더 이상 ‘표현’이 아니다. 중국이라는 이유로 분리하고 배제하고 불이익을 주는 ‘차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특정 카페를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것은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다는 신호다. 이 신호에 다른 카페뿐만 아니라 레스토랑 등 다른 영업장, 고용과 교육과 같은 삶에 필수적인 영역까지 반응할 수 있다. 누군가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을 수 있고 차별해도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안은 혐중이지만 혐오를 이용한 정치가 본격화되었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정치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무기력해질수록 혐오정치에 대한 유혹은 더 강해질 것이다. 지금 당장은 혐중이 이슈가 되고 있지만, 혐오의 표적은 다른 집단으로도 쉽게 옮겨갈 수 있다. 정치가 혐오를 이용하는 정치 기술을 습득한 이상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못된 기술은 다양한 영역에서 진화해나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도 혐오의 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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