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1.0 °
이데일리 언론사 이미지

"사랑해서 해칠 수 없는…쓸쓸한 좀비 그렸어요"

이데일리 장병호
원문보기
소설집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천선란 작가
좀비 '덕심'으로 6년 만에 완성
멸망한 세상 속 생존자 고독 담아
"아주 작은 희망이라고 희망이죠"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SF(과학소설) 작가 천선란(32)이 최근 발표한 새 소설집 ‘아무도 없지 않는 곳에서’에는 색다른 좀비가 등장한다. 좀비라면 으레 식욕만 남아 사람을 먹기 위해 달려드는 괴물로 묘사되지만, 천선란이 그린 좀비는 어딘가 무기력하다. 좀비 장르에 대한 이해 부족을 의심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천선란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연작소설집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의 천선란 작가가 최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연작소설집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의 천선란 작가가 최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최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만난 천선란은 “이번 소설은 순전히 ‘덕심’(팬의 마음)으로 쓴 책”이라며 “좀비가 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 반응할 것이란 상상력을 발휘해서 썼다”며 수줍게 웃었다. “어린 시절 언니와 함께 이불을 깔고 좀비 영화를 보는 것이 가족 문화였을 정도로 좀비 장르를 좋아한다”는 천선란만이 할 수 있는 좀비 장르의 변주인 셈이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괴물이 아닌 좀비

연작소설집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의 천선란 작가가 최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연작소설집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의 천선란 작가가 최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소설집의 출발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온라인 독서 플랫폼을 통해 2편의 단편 소설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를 발표한 뒤 출판사 허블로부터 좀비 소설집을 제안받았다. 이에 단편 1편을 더 추가해 소설집을 선보이려고 했다.

그러나 소설집이 완성되기까지 무려 6년이 걸렸다. 좀비 장르를 너무 좋아하기에 만족할 만하게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좀비 장르의 법칙을 따라갈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단편 ‘우리를 아십니까’를 완성했고, 앞서 발표한 단편도 뼈대만 남겨두고 다시 썼다. 천선란은 “‘우리를 아십니까’를 쓰면서 비로소 나의 언어로 쓸 수 있는 좀비 소설이 나올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각각의 단편이 다루는 설정도 흥미롭다.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우주선에서 좀비가 된 연인을 지키려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다.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에선 멸망 이후 지구에서 좀비가 된 가족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우리를 아십니까’는 좀비와 동식물만 남은 지구에서 인간일 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 좀비 부부 이야기다.

천선란이 그린 좀비들은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선 ‘괴물’이 아니다. 사람의 목소리와 호흡을 느끼는 동안 아주 잠깐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치매인 어머니를 돌보면서 든 생각을 소설에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천선란은 “어머니가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을 때나 숨을 느낄 때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목소리와 호흡은 뇌가 아닌 몸이 기억하고 반응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며 “소설 속 좀비 묘사에 응용했다”고 설명했다.


“히어로물·시리즈물 소설도 쓰고파”

천선란 작가 소설집 ‘아무도 없는 곳에서’ 표지. (사진=허블)

천선란 작가 소설집 ‘아무도 없는 곳에서’ 표지. (사진=허블)


그래서일까. 천선란이 그린 좀비 이야기는 무섭기보다 쓸쓸하고 아련하다. 멸망한 세계의 고독과 마주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고독은 천선란이 소설을 쓰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는 첫 산문집 ‘아무튼, 디지몬’(2024)에서도 자신을 “고독을 타고난 아이”라고 했다.

천선란이 좀비 장르에서 주목한 것 또한 고독이다. 그는 “영화 ‘나는 전설이다’를 본 뒤 좀비 장르가 좋은 이유가 생존자가 느끼는 고독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면서 “소설을 통해 고독을 지워보려 노력하지만 결국엔 고독이 묻어난다. 고독을 이겨내는 인물, 고독에 주저앉은 인물의 이야기를 계속 쓰게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떻게든 살아가며 삶의 의지를 꺾지 않는다. 천선란은 “희망은 아주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천선란은 2019년 장편소설 ‘무너진 다리’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이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소설부문 대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천 개의 파랑’은 연극, 뮤지컬 등으로 제작됐고 지난 5월 미국 워너 브라더스 픽처스와 영화화 계약을 체결했다.

그에게 SF의 매력을 묻자 “현 상황에서 우리의 문제를 타자화해서 볼 수 있게 하는 장르이자 인간의 존재를 되묻는 장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천선란은 “이번 소설 집필을 마치고나니 인생의 큰 숙제를 끝낸 것 같다”며 “제대로 된 좀비 장르 소설이나 히어로물을 쓰고 싶고, ‘해리포터’ 같은 시리즈물도 해보고 싶다”며 웃었다.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미미 첫사랑 고백
    미미 첫사랑 고백
  2. 2라건아 더비
    라건아 더비
  3. 3손흥민 토트넘 잔류
    손흥민 토트넘 잔류
  4. 4잠실대교 크레인 사고 사망
    잠실대교 크레인 사고 사망
  5. 5조지호 파면
    조지호 파면

이데일리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