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가 시작된 10월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조희대 대법원장이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
박용현 | 논설위원
오늘도 전국의 법원에선 수많은 재판이 열렸다. 형사재판에선 수백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을 터. 형량을 합치면 수백년, 어쩌면 천년이 넘을 수도 있다. 민사재판에선 수백억∼수천억원, 어쩌면 그 이상의 국민 재산이 왔다갔다 했을 것이다. 이렇게 사법부는 개개인의 삶에 가장 구체적·직접적·최종적인 영향력을 지닌 공권력이다. 판사들을 신뢰할 수 없다면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거나 재산을 잃은 사람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재판을 부정하게 될 것이다. 법치가 흔들리고, 최악의 경우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는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지금 사법부는 신뢰엔 아무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오히려 신뢰를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짓을 일삼고 있다.
판사들이 근무 시간에 낮술을 먹고 소란을 피웠다. 그중에는 여성 접객원을 보러 가자는 메시지를 변호사와 주고받은 판사도 있다. 그래도 대법원은 단호한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 지귀연 판사는 변호사들과 고급 술집에서 찍은 사진까지 공개됐는데도 접대비가 100만원 미만이라 징계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판사에게 역사적 재판을 맡겨두고 있다. 법을 거스른 윤석열 구속취소 결정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전혀 없다. 대법관 2명은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사건을 ‘집중심리’ 했다는 기간의 절반(13일) 동안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그러고도 충실한 재판이었다고 우긴다.
법원장이라는 사람들은 국정감사에서 ‘12·3 비상계엄은 내란 아니냐’는 질문에 답을 안 했다. 지켜보는 국민들은 ‘법적 판단 능력이 모자란가’ 의아했다. 백보 양보해서, 관련 재판이 ‘계속’(繫屬·형사 사건이 특정 법원의 재판 대상으로 되어 있는 상태) 중이므로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답변을 자제한 것이라고 양해할 수 있다. 그런데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은 ‘이재명 대통령 재판을 임기 중 재개할 수 있냐’는 질문엔 “이론적으로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 대통령 재판 역시 중단되기는 했지만 ‘계속’ 중이다. 이중적 태도다. 또한 그 답변은 헌법 제84조에 따라 재판 중단 결정을 내린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며, 향후 판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재판 독립을 사법부 스스로 훼손한 것이다. 무엇보다 임기 중 재판이 재개됐을 때 초래될 헌법적 대혼란, 거의 아노미적 상황에 대한 숙고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책임한 답변이다. 주권자가 선출한 대통령을 판사의 판결 하나로 내치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니, 조희대 대법원이 이 대통령의 후보 자격을 박탈하려 했던 행위와 궤를 같이하는 사법독재적 발상이다.
법원장들의 이중적 태도는 또 있다. 법원 재판이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을 때 이를 헌법재판소가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인 ‘재판소원’에 대해 “위헌”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재판소원은 ‘이론적으로 가능한’ 수준을 한참 넘어 거의 모든 헌법학자들이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현실적으로 가능한’ 제도다. 헌법학자들이 진보·보수를 넘어 의견 일치를 보인다. 그런데도 이론적 가능성조차 인정하지 않고 위헌이라고 잘라 말하는 게 법원장들의 헌법적 상식 수준이다.
이렇게 이중 잣대에 숙고할 줄도 모르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법관들이 바로 나의 재판을 맡는다면, 어찌 기꺼이 그 결과를 받아들이겠나.
국민이 원하는 건 오직 공정한 사법부다. 공정성은 사법부 제1의 가치다. 사법 독립성은 그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하나의 필요 조건일 뿐이다. 한 미국 판사의 표현을 빌리면, “독립성은 공정하라고 주어진 자유”다. 또 하나의 필요 조건은 책임성이다. 입법·행정부는 국민이 직접 선거로 책임을 묻는다. 선출되지 않는 사법부도 공정성을 잃었을 때는 재판을 바로잡고 법관을 징치할 수단이 있어야 한다. 사법부 스스로 하지 못하면 외부적 통제 수단이 필요하다. 독립성과 책임성은 공정성이라는 동전을 이루는 양면이다. 그리고 그 공정성의 성취 정도를 재는 척도가 바로 국민의 신뢰다. 지금 사법 신뢰는 위험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오늘 재판을 받은 사람들 중엔 억울한 이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판결은 판결이다. 제도를 통해 바로잡지 못하는 한 따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법치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인간인 판사에게 법정에서 경의를 표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그렇다면 사법부도 경의에 화답해야 한다. 국민의 불신을 초래했다면 엄중히 책임을 지고 신뢰 회복을 위한 제도 개혁을 받아들여야 한다. 설령 억울한 점이 있더라도 그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법치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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