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보관하고 있다가 불법 구금돼 옥살이했던 정진태(오른쪽 두번재)씨가 28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위반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최정규 변호사(왼쪽) 등과 만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42년 전 책 <자본론>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한 70대 남성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4단독 김길호 판사는 28일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처벌받았던 정진태씨(72)의 재심에서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정씨는 1983년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카를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 등 이적표현물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씨는 실형을 선고받고 3년간 옥살이를 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지난 1월 이 사건을 인권 침해 사건이라고 보고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화위는 조사 과정에서 1983년 정씨를 체포한 서울 관악경찰서가 당시 영장 없이 23일간 정씨를 구금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정씨가 구금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구타 등 가혹행위와 함께 허위 자백을 강요받은 사실도 확인했다.
법원은 지난 2월 재심을 결정했다. 검찰도 지난달 25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증거기록과 피고인 주장의 신빙성 등을 종합해 고려하면 피고인이 불법 체포된 것이 사실로 보인다”며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법원은 “사상과 학문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가급적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며 “피고인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등으로 위와 같은 서적을 소지하고 탐독한 것으로 보인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또 정씨가 대학 시절 가입했던 스터디(공부 모임)도 “북한에 동조할 목적으로 보기 어렵다”며 반국가단체가 아니라고 밝혔다.
정씨는 재판을 마친 직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0년 동안 짓눌러왔던 굴레를 벗어 정말 다행”이라며 “이제야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보안법으로 고생한 사람들이 많은데 아직 재심을 받고 있지 못한 경우도 많다”며 “(그들도) 소명의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씨의 변호인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검찰·법원이 무죄를 구형하고 선고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국가폭력 피해자인 정씨가 받는 고통이 컸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검찰은 법원의 재심 인용 전 재심 청구를 기각하려고 했고, 재판 과정에서도 정씨를 체포한 수사관을 법원이 증인으로 인용해 정씨의 트라우마가 우려되는 상황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건 당시에 인권 보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최근 논의되는 특별재판부 설치는 정치사건이 아닌 재심사건 등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욱 기자 woo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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