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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윤가은 감독은 믿을 수 있는 기적을 원한다

뉴시스 손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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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새 영화 '세계의 주인' 발표해
성폭력 피해자 고등학생 이야기 담아내
"한계 안에서라도 진짜를 발견하길 원해"
"믿을 수 있는 판타지와 기적 보여주길"
코로나 사태 거치며 감독 못할 수 있다고
"그런데 영화 만들 때 비로소 공부하더라"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세계의 주인'은 성폭력 피해자에 관한 얘기다. 없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흔히 우리는 발생한 사건에 개탄하고 가해자에 분노하며 피해자를 연민하는데, 같은 소재의 여타 영화는 이 세 가지를 주로 다루려 하는 것에 반해 '세계의 주인'은 이 중 아무것도 활용하지 않는다. 이 영화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윤가은(45) 감독은 일이 다 지나가고 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고 있는 일상을 담으려 한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참혹한 일은 벌어졌고 생존한 이들이 있으며 그들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바로 그 생존자가 고등학생 '이주인'이다.

'세계의 주인'은 충격적이다. 우리 선입견은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이주인이 하루 하루를 고통 속에서 보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작품은 그 색안경을 간단히 제거해버리고 이 소녀의 삶이 얼마나 평범하게 찬란할 수 있는지 입증하려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주인이 이토록 빛나는 아이인 게 뭐가 잘못된 거냐고 반문하는 것만 같다. 이주인은 장난기 많고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 종잡을 수 없는 여자친구, 친구 같은 딸, 엄하면서 다정한 누나, 착실한 제자다. 짐작조차 되지 않는 그 고통 속에서도 말이다.

윤 감독은 "진짜여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진짜라는 것,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바로 그 진짜에 대한 고집과 강박이 있습니다." 윤 감독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와 완성된 영화엔 한계가 있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그는 그 제한된 테두리 안에서라도 존재하고 있는 진짜를 어떻게든 발견해내는 게 자신이 만드는 영화가 해내야 할 일이며 자신의 몫이라고 했다. "당연히 두려웠습니다. 진짜를 담아내지 못 할까 봐요. 하지만 제 영화가 모든 걸 대표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오만한 것이었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 겁니다. 아주 낯설지만 진짜인 어떤 것 말입니다."

이때 윤 감독은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에 관해 고민했다고 한다. '세계의 주인'은 사회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삶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보도일 수도 고발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윤 감독은 그의 영화에 의지와 바람이 담겨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영화는 현실을 담아내는 그릇 이상이어야 한다. 그게 내 바람"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현실을 가공합니다. 다만 제 영화는 현실을 가공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기를 원했습니다. 믿을 수 있는 판타지, 믿을 수 있는 기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집'(2019) 이후 후속작이 나오는 데 6년이 걸렸다. 윤 감독은 장편 데뷔작 '우리들'(2016)을 내놓기 전부터 이와 비슷한 이야기에 관해 고민했다고 했다. 출발은 10대 여성 청소년의 성(性)과 사랑에 관한 얘기였다. 이 주제에 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경로가 바뀌고 말았다. 그는 "너무나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있었고,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수도 없이 시나리오를 쓰고 고치고 폐기했다. 그 과정에만 3~4년이 걸렸다. 윤 감독은 "이 이야기에서 도망쳤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고 했다. 그러다 생존자들을 직접 만나 얘기 듣고, 이금이 작가의 '유진과 유진'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게 됐다.

그런 '세계의 주인'을 보고 나면 윤 감독이 예전의 윤 감독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게 된다. 전작 두 편은 개인의 속내를 포착해 신중하고 정교하게 그려내는 서정성에 중점을 뒀다면 신작은 직면하고 직시하려 하며 더 정확하면서 더 예리한 메시지를 내놔야 한다고 다짐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주인의 마음을 담아내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연대를 얘기한다. 이 영화는 한 소녀의 마음, 한 가족의 사정을 넘어서 사회의 합심을 향해 걸어간다. "물론 제가 안 해 본 것들을 시도하고 용감하게 그것들을 해내길 원했습니다. 영화를 더 재밌게 만들기 위해 분명 제겐 도전이 필요했습니다. 다만 제 영화의 변화는 제 태도의 변화이자 의지의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이 이야기 자체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코로나 사태를 지나며 윤 감독은 더는 영화를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른 직업을 찾기엔 이미 너무 나이가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영화로 돌아와야 했다고 농담 섞어 당시 심경을 얘기했다. 매너리즘도 있었고 영화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너무 모른다고 좌절했다. 그래도 윤 감독은 영화로 돌아왔다.

"얼마 전에 자파르 파나히 감독님의 '그저 사고였을 뿐'을 봤어요. 참 강력한 체험이었습니다. 영화라는 건 어떠 식으로든 들어갈 때 마음과 나갈 때 마음을 바꿔놔요. 전 이게 너무 좋더라고요. 이보다 더 신속정확하고 효율적인 매체가 있을까요. 전 이런 영화를 아직 놓을 수가 없어요." 윤 감독은 그러면서 덧붙였다. "전 영화를 만들 때 비로소 세상을 공부하게 돼요. 명작을 만들겠단 생각은 없습니다. 전 다작하고 싶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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