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여야 정쟁이 심화할 당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일합시다'를 적어 즉석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국회의원은 늘 바쁘다.
이 문장을 보고 화를 낼 분이 많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다만 국민의 마음에 쏙 드는 일을 하는 국회의원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도 바빴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의 나는 반드시 귀가해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일이 늦게 끝나면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잤다. 새벽에 청소하러 들어오신 분이 깜짝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른 뒤로는 ‘수면 중’이라 적은 종이를 문에 붙여 뒀다.
근면 성실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바쁘다’라는 말은 요긴하다. 하지만 내 건강은 그 핑계를 접수해주지 않았다. 과로로 건강을 망친 후에야, 나는 나를 돌보는 의식을 시작했다. 귀가, 청소, 고양이가 헉헉댈 때까지 놀아주기. 외식을 해도 괜찮았지만, 집에서 굳이 요리를 하고 설거지거리를 만들었다. 그게 다 나를 돌보는 시간이었다.
가까운 사람을 챙기는 일도 결국 나를 돌보는 일이었다. 내가 정신을 영 놓고 있지는 않다는 증거였고, 내가 그들을 챙기듯 그들도 나를 챙겨줬으니까. 하지만 설거지거리와 달리, 사람은 늘 그곳에 있지 않다. 나는 자주 펑크를 냈고, 그때마다 다들 마지못해 넘어가 줬다. 그게 고마우면서도, 아주 미안했다. 나의 관계는 내 노력보다 ‘관계자들의 너른 양해’로 유지되었다.
국회의원 시절 거의 3년을 만난 애인이 있다. 그 사람 생일은 국정감사가 시작되는 10월 초였다. 그 시기엔 아침부터 밤까지 회의가 이어졌고, 관계는 또 구멍이 났다. 그날도 자정이 다 되어서야 오늘이 그의 생일이었음을 깨달았다. 같이 야근하던 비서관님이 “지금이라도 가보라”고 조언했지만, 나는 “지금 거기 들르면 내일 컨디션 관리가 안 되는데요”라고 답했다. 같은 공간에 있던 모두가 나를 쓰레기 보듯 했다. 까먹은 건 물론 잘못이다. 하지만 연애는 이미 망했으니 국정감사라도 잘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나는 세 번의 생일 중 두 번을 잊었다. 세 번째는 잊지 않았지만 그달에 우린 헤어졌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
국회의원은 늘 바쁘다면서도 연애는 했잖은가. 나도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됐을 일이다. 국회의원이 뭐라고, 다 변명임을 알고 있다. 과로 사회에서, 관계의 어려움이 개인 성실성 문제만은 아님을 알아도 그렇다.
올해 국정감사는 유례없이 칼퇴한다는 기사를 봤다. 제22대 국회의원들은 구조적 문제마저 해결한 듯하다. 축하한다. 이 정도라면 나도 애인의 생일이나 자식의 결혼식 날짜를 잊지 않을 수 있을 거다.
‘바쁨’의 진짜 비극은 관계의 결손이다. 어느 직종이든 일과 삶 사이의 완벽한 균형을 찾은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그중 한 명으로서 명심하려 한다. 여유가 있을 때 잘하는 건 쉽다. 여유가 없을 때 잘하는 게 어렵다. 무엇보다 어려운 건, 언제나 여유를 갖는 것. 바쁘다는 말 속에서 무언가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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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 목수, 前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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