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1980 사북’. 엣나인필름 제공 |
기록은 기억보다 강하다. 그 강한 힘은 때로 가장 깊숙한 곳에 묻혔던 기억까지 캐내어 사라졌던 진실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지난 22일 개봉한 ‘양양’과 29일 개봉을 앞둔 ‘1980 사북’은 5년 넘게 곡괭이 대신 카메라를 들고 끈질기게 진실을 캐온 두 다큐멘터리스트의 인내심과 질문이 빚어낸 수작이다.
‘1980 사북’은 방글라데시 치타공 노동자들의 삶을 담은 ‘아이언 크로우즈’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박봉남 감독의 신작이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이 벌어지기 딱 한달 전, 공수부대 투입 직전까지 가면서 5·18의 전초전처럼 벌어졌던 사북 동원탄좌 사건을 그렸다.
다큐멘터리 ‘1980 사북’. 엣나인필름 제공 |
한국사를 전공하고도 막연히 광부들의 소요 사태로만 알고 있던 박 감독에게 사북행을 제안한 이는 대학 1년 선배 황인욱 정선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이었다. 사북에서 나고 자란 황 소장은 성인이 된 뒤 “나만 사북을 탈출했다. 나만 잘 먹고 잘사는 것 같다”는 죄책감을 갖고 살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 “파묻히다시피 한 자료를 찾고 사건에 관계된 이들을 찾아내는 데 많은 시간이 들었습니다. 자료를 보면 상처는 곳곳에 드러나 있는데 가해자는 잘 보이지 않고, 현장에 있던 광부들 역시 뿔뿔이 흩어져서 전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로운 작업이었습니다.” 지난 24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만난 박 감독이 말했다.
영화는 당시 전두환 정권의 보도 통제 속에서도 사북을 다룬 기사들과 증언을 통해 1년에 200명 이상 죽어나가도 개선되지 않는 노동 환경과 저임금, 어용 노조에 대한 분노로 일어난 시위와 공권력의 부당한 개입, 폭력으로 치달은 과정과 경찰의 죽음, 이후 무자비한 공권력의 폭력과 고문 등을 밝힌다. 당시 광부들을 대표한 이원갑 사북항쟁동지회 회장뿐 아니라 채집 사진에 찍혔다는 이유만으로 끌려가 고문을 받고 무고한 죄목으로 형을 살았으며 평생 후유증으로 고통받은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친다.
다큐멘터리 ‘1980 사북’을 연출한 박봉남 감독. 엣나인필름 제공 |
하지만 영화는 중간쯤 이르러 공권력의 폭력과 잊힌 과거사 발굴이라는 여정에서 발걸음을 멈춰 선다. 박 감독 눈에 들어온 사진 한장, 팔이 묶인 채 시위대 한가운데 있던 중년 여성의 모습 때문이었다. “당시 어용 노조위원장이라고 광부들이 비난했던 이재기씨의 아내, 김순이씨였습니다. 남편이 어딨는지 밝히라는 광부들의 요구는 폭력적이었고, 그 역시 평생 응어리를 안게 된 무고한 피해자였죠.”
사건을 둘러싼 울타리는 노동자를 착취한 기업과 이들의 저항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국가였지만, 그 안에서 노동자들끼리의 폭력과 배신, 밀고가 있었다. 당시 광부들을 대표해 이원갑 회장이 김순이씨 유족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황 소장과 고문을 당하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이 회장의 대립은 영화 후반 중요한 장면으로 등장한다. 박 감독은 영화를 찍으며 “‘우리의 투쟁은 늘 정당한가, 나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사북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적 사건을 바라볼 때 우리의 오류에 대한 성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역사적 상처의 치유를 위해 어떤 절차가 필요한가’라는 질문도 함께 던지고 싶었습니다.”
다큐멘터리 ‘1980 사북’의 출연자로, 고문 후유증으로 영화가 개봉하기 전 세상을 떠난 강윤호씨. 엣나인필름 제공 |
엔딩 크레디트의 출연 광부들 이름 상당수 앞에 ‘고’가 붙는다. 국가의 사과도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분노와 수치심, 고문 후유증으로 단축된 생을 마무리한 이들이다. 박 감독은 “영화를 통해 드러난 사북 사건의 진실은 40%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며 “국가가 하루빨리 직권 조사에 나서 200명에 달하는 피해자들과 드러나지 않은 가해자들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가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힘든 작업이었다”면서도 그는 “직권 조사가 시작되면 카메라 들고 따라붙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큐멘터리 ‘양양’. 영화사 진진 제공 |
‘양양’의 시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술 취한 아빠와의 통화에서 평생 몰랐던 가족 , 젊은 시절 세상을 등진 고모의 존재를 알게 된 양주연 감독은 이후 3년 동안 마음 한구석에 고여 있던 고모를 찾아나서기로 마음먹었다 . “고모가 유명한 사람이 아니니까 자료도 거의 없어서 이걸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유명한 사람만 기억돼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 ”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양 감독이 말했다 .
할머니가 살던 집 창고에서 그는 꼭꼭 숨겨져 고이 보관돼 있던 고모의 사진과 고모가 읽고 귀퉁이에 메모를 남긴 책들을 발견했다. 그제야 고모의 존재를 실감했다. 첫번째 인터뷰이인 아버지가 10대 시절 경험했던 누이의 죽음은, 충격은 선명했지만 사실은 흐리게 뭉개져 있었다. 양 감독은 고모의 동창들을 찾아 흩어지고 바랜 기억의 작은 조각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한 남성이 등장한다. 대학 시절 연애하다 헤어지려 한 고모를 집요하게 쫓아다닌 그 남자의 집에서 고모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영화 ‘양양’을 연출한 양주연 감독. 영화사 진진 제공 |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반대로 더 넓은 세상에서 날고 싶은 꿈이 꺾인 총명했던 한 여성의 삶, 그리고 자살했다는 이유로 가족과 세상에서 지워진 존재의 복원을 향해가던 영화는 의도치 않게 ‘데이트 폭력’이라는 동시대적 문제를 만난다. “고모의 죽음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죽음의 진실을 파헤쳐야 하는 국면에 맞닥뜨려서 당황스러웠죠.” 그는 고모 친구들의 증언을 모으며 현장에 있던 남성을 수소문하다 중단했다고 한다. “고모의 마지막이 궁금했지만, 사건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고모의 마지막을 그 남자의 입을 통해 규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 더 중요하게 말해야 하는 건 뭘까,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교제 폭력 사건들에서 개인의 문제로 지나가버리는 죽음이 많이 있다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양양’. 영화사 진진 제공 |
‘양양’은 잃어버린 존재를 복원하는 작업인 동시에 남은 이의 해원을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평생 모른 척하면서도 끝내 가슴에서 지울 수 없었던 누이의 이름을 양 감독의 제안으로 가족의 묘비에 새겨 넣고 얼굴에 안도감이 깃든다. “이제는 가족이 모이면 작은아버지들이 자연스럽게 고모 이야기를 꺼내시기도 해요. 가족 안의 성차별적인 부분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도 세대가 바뀌면서 변화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제 뱃속에 있던 용용이(아이 태명)가 크면 우리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죠.”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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