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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읽다]극지는 핵실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아시아경제 김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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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연, 남·북극 빙하 속 플루토늄-239으로 대기 수송의 계절적 특징 규명
1950년대 태평양에서 실시된 대기권 핵실험의 흔적이 남극과 북극 빙하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국내 연구진이 이 방사성 물질을 단서로 삼아, 성층권에서 대류권을 거쳐 극지로 이동하는 지구 대기 수송의 '계절적 경로'를 규명했다.

극지연구소는 27일 남극과 그린란드 빙하에 남은 플루토늄-239(Pu-239) 의 미세한 흔적을 분석해 공기 이동의 시간적·공간적 패턴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성과는 과거 핵실험의 낙진이 지구 대기를 따라 어떻게 확산됐는지를 실측 자료로 확인한 첫 사례다.
2013-14 남극 스틱스(Styx) 빙하시추 현장에서 연구자들이 시추한 빙하코어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극지연구소 제공

2013-14 남극 스틱스(Styx) 빙하시추 현장에서 연구자들이 시추한 빙하코어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극지연구소 제공


남극이 기억한 핵실험의 흔적

연구는 1950~1980년 사이 대기권 핵실험의 낙진이 어떻게 전 지구적으로 확산했는지를 추적하는 데서 출발했다.

한영철 박사 연구팀은 남극과 그린란드 등 4곳에서 채취한 빙하코어(ice core)를 분석해, 수십 년에 걸쳐 빙하에 축적된 플루토늄-239의 양을 정밀 측정했다.

그 결과, 1952년 '아이비 마이크(Ivy Mike)' 실험과 1954년 '캐슬(Castle)' 실험의 흔적이 뚜렷하게 구분됐다. 두 실험은 태평양 마셜제도의 인접한 환초(산호섬)에서 진행됐지만, '캐슬'의 흔적은 남극 빙하에서 뚜렷하게 나타났지만 '아이비 마이크'의 흔적은 미약하거나 늦게 기록됐다.

대기의 계절이 남긴 차이

연구팀은 이러한 차이를 '대기 순환의 계절적 변화'에서 찾았다.


핵실험 당시 발생한 미세한 방사성 입자들이 성층권으로 상승한 뒤, 다시 대류권으로 내려오거나 극지 방향으로 이동하는 과정이 계절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이다.
남·북극 빙하 코어에 기록된 플루토늄-239 낙진과 핵실험 규모의 시간적 상관관계를 나타낸 그래프. 1945년부터 1980년까지의 핵실험 시기와 북극(그린란드 NEEM) 및 남극 빙하코어 내 플루토늄-239 농도 변화를 비교한 그래프다. 북반구에서 대규모 핵실험이 주로 이루어졌으며, 각 코어의 플루토늄 농도 피크가 주요 핵실험 시기와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극지연구소 제공

남·북극 빙하 코어에 기록된 플루토늄-239 낙진과 핵실험 규모의 시간적 상관관계를 나타낸 그래프. 1945년부터 1980년까지의 핵실험 시기와 북극(그린란드 NEEM) 및 남극 빙하코어 내 플루토늄-239 농도 변화를 비교한 그래프다. 북반구에서 대규모 핵실험이 주로 이루어졌으며, 각 코어의 플루토늄 농도 피크가 주요 핵실험 시기와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극지연구소 제공


특히 남반구 여름철에는 성층권과 대류권 사이의 공기 교환이 활발해져, 높은 고도에 있던 물질이 더 빠르게 극지로 이동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교환 현상이 실제로 계절에 따라 변한다는 점을 실측 자료로 입증한 첫 사례로, 기존 대기 모델의 이론적 가설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가 됐다.


빙하 속에 남은 지구의 기억

연구진이 분석한 플루토늄-239의 양은 얼음 1g당 약 10?¹? g 수준의 극미량이었다. 이는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정밀 분석 기술을 통해서만 측정이 가능한 수준으로, 이번 연구에서는 연 단위를 넘어 계절 단위의 변동까지 구분해 냈다.

그 결과, 남·북극의 빙하가 인류가 남긴 핵실험의 흔적을 기록한 '자연의 시간 캡슐' 역할을 하고 있음이 입증됐다.

이 데이터는 향후 대기 수송 모델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활용될 뿐 아니라, 화산재 확산 예측·기후 변화 분석·지구공학적 물질 주입 시뮬레이션 등에도 응용될 전망이다.

남극 Hercules Nv 빙하시추 현장과 빙하코어. 극지연구소 제공

남극 Hercules Nv 빙하시추 현장과 빙하코어. 극지연구소 제공

논문 제1저자인 신진화 박사는 "과거 핵실험의 낙진이 오늘날의 대기 과학 연구에 다시 쓰였다"며 "지구 대기의 '보이지 않는 길'을 추적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연구"라고 설명했다.

신형철 극지연구소 소장은 "남극 시료 확보부터 분석, 해석, 모델링까지 국내 연구진이 독자적으로 수행한 결과"라며 "대한민국의 빙하 분석 기술력과 연구 역량을 세계에 입증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10월호에 게재됐다. 논문명은 "극지 빙하 속 플루토늄 낙진 신호를 이용한 성층권-대류권 교환 경로 추적(Tracing Stratosphere?Troposphere Exchange Using Fallout Plutonium Signatures in Polar Ice Cores)"으로, 신진화 박사가 제1저자, 한영철 박사가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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