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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보수도 진보도 아닌 원칙론자” 음악인 신해철

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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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14년 10월 27일 46세
신해철

신해철


‘마왕’이라 불리는 가수 신해철(1968~2014)은 세상 떠나기 석 달여 전 조선일보와 인터뷰했다. 신곡 4곡을 담은 미니 앨범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를 내고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대중음악 담당 기자와 만났다. 넥스트 6집 이후 6년만에 낸 앨범이었다.

신해철은 체중이 많이 불어있었다. 앞서 큰 수술을 두 번 받았다고 했다. 간을 반 정도 잘라내고 쓸개를 떼어냈다. “체중이 느니까 베이스가 네 음 정도 더 내려가는 거예요. 그래서 ‘살찐 김에 녹음이나 하자’고 했죠.”(2014년 7월 4일자 A21면)

사망 석 달 전 신해철 인터뷰. 2014년 7월 4일자 A21면.

사망 석 달 전 신해철 인터뷰. 2014년 7월 4일자 A21면.


석 달 후 부고가 오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날 신해철을 인터뷰한 한현우 기자는 “곧 다시 만나자던 그는 느닷없는 부음의 주인공이 됐다”며 “늘 쾌활하고 수다스럽던 그가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슬프고도 낯설다”고 애도했다.

신해철이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타고 데뷔한 이후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기사는 모두 14건이다. 1996년엔 3차례 인터뷰했다. 다른 언론사와 함께 인터뷰한 때도 있을 것이다. 따로 사진을 찍고 긴 인터뷰 기사가 실린 점 등을 고려하면 조선일보 단독 인터뷰는 최소 8번이다.

윤상과 함께 공동 앨범 '노 댄스'를 낸 신해철. 1996년 10월 20일자.

윤상과 함께 공동 앨범 '노 댄스'를 낸 신해철. 1996년 10월 20일자.


신해철이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소위 진보적 연예인으로 떠올랐을 때 이른바 386세대 중 일부는 어색하게 느낀 이도 있었다. 한현우 기자는 신해철에 대해 애정을 담아 쓴 ‘애도, 음악가 신해철’ 글에서 이런 사실을 적시했다.

“386세대들이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우민화(愚民化)의 최고 상품으로 유치한 이벤트’라고 불렀던 88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그는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라고 노래했다. 지금 대학생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 당시에 ‘서강대씩이나’ 다니면서 그런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것은 ‘백만 학도’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2014년 10월 30일자 A33면)


신해철도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현우의 팝 컬처 '애도, 음악가 신해철'. 2014년 10월 30일자 A33면.

한현우의 팝 컬처 '애도, 음악가 신해철'. 2014년 10월 30일자 A33면.


“나는 386세대라고 말할 자격이 없어요. 88년에 대학가요제 나가서 사랑 타령을 했으니 말이죠. 그때도 분명히 욕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었죠. 그렇지만 음악을 너무 좋아했고, 대학에 가면 제일 먼저 해보고 싶었던 게 대학가요제였어요. 그래서 후회는 안 해요. 오히려 눈치 보느라 대학가요제에 안 나갔더라면 평생 후회했을 거예요.”(2014년 10월 30일자 A33면)

신해철은 2007년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에선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를 하지 않겠다”며 여야 모두를 비판했다.


2007년 1월 19일자.

2007년 1월 19일자.


“좌파든 우파든 ‘저 놈 되면 나라 망한다’는 얘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제발 정치하는 사람들 좀 세련돼졌으면 하고요. 아직도 치고받고 창피해서 원.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왜들 다 그런지….”(2007년 1월 19일자 A21면)

2008년 인터뷰에선 “난 보수도 진보도 아닌 원칙론자”라고 말했다.

“내가 주장하는 얘기는 전부 원칙과 기준에 대한 얘기다. 우리보다 앞서 실험을 했던 다른 국가들에서 검증이 된 만국 공통의 스탠더드라는 거지, 내가 옳으니 나를 따르라는 것이 아니다.”(2008년 3월 15일자 B9면)


넥스트 리더 신해철. 1997년 11월 27일자.

넥스트 리더 신해철. 1997년 11월 27일자.


어쩌면 신해철은 일관된 태도를 보였는지도 모른다. 억압하는 것에 대한 저항 또는 투정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신해철은 아이돌 음악과 팬덤에 대해서도 독설을 날렸다.

“팬덤이 점점 저질화되는 것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건 정말 웃기는 거예요. 서태지에서 H.O.T와 g.o.d를 거쳐 동방신기로 가면서 점점 저질화하는 것 같아요. 아이돌 팬덤의 특질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죠. 방송국 가서 다른 가수 노래할 때 박수 안 치고 침묵하는 이런 저질 팬이 세계 어디에 있어요?”(2008년 12월 5일자 A20면)

신해철은 ‘그대에게’로 데뷔 이후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재즈 카페’ 등 히트곡을 내며 대중 가수로 성공했다. 솔로 2집 ‘Myself’부터 뛰어난 음악인으로서의 면모도 보여주었다. 밴드 음악을 하며 저항적인 록 정신과 실험적인 음악에도 도전했다. “록과 일렉트로닉이란 굵은 줄기로 뻗어가면서 자잘한 재미와 위트를 선보인 그는, ‘좌파 연예인’이 아니라 한국 최고의 음악가 중 한 명”(한현우)이었다.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20주년 공연 음반 기획한 신해철과 강헌. 2004년 12월 10일자.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20주년 공연 음반 기획한 신해철과 강헌. 2004년 12월 10일자.


신해철과 함께 ‘박노해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 음반을 함께 기획했던 음악평론가 강헌은 2018년 책 ‘신해철’을 냈다. 강헌은 신해철에 대해 “집요한 광기와 좌충우돌의 불화, 해학적이기까지 한 허세와 대책 없는 섬세함까지 갖춘, 대한민국의 1980년대가 분만한 가장 모순적인 열정을 지닌 청년”이라고 했다.

신해철은 46세 때인 2014년 10월 27일 장 협착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의료 사고로 인한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부조리극 같은 죽음이었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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