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인간이 불을 집어든 날, 첫 셰프가 탄생했습니다. 100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음식에 문화를 담았습니다. 미식을 좇는 가장 오래된 예술가, 셰프들의 이야기입니다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짜장면 시키신 분~”
말만 들어도 행복해지는 음식 짜장면, 입 안 가득 한입 먹으면 마음까지도 배부른 기분이다. 그건 아마 짜장면과 함께 한 추억 때문일 것이다. 졸업식, 생일, 이삿날 등 좋은 날만 먹을 수 있던 짜장면, 성인이 된 지금도 짜장면을 먹을 때면 우리도 모르게 어릴 적 행복했던 향수가 떠오르는 것 아닐까.
그런데 왜인지 지금의 짜장면은 그 시절보다 맛이 없게 느껴진다. 이제는 흔하게 먹을 수 있어서일까. 아니면 단순한 추억의 미화일까. 그러나, 많은 이가 짜장면이 맛이 없어졌다는 데 동의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정말 짜장면은 맛이 없어진 것일지 모른다.
임태훈 셰프. |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짜장면 시키신 분~”
말만 들어도 행복해지는 음식 짜장면, 입 안 가득 한입 먹으면 마음까지도 배부른 기분이다. 그건 아마 짜장면과 함께 한 추억 때문일 것이다. 졸업식, 생일, 이삿날 등 좋은 날만 먹을 수 있던 짜장면, 성인이 된 지금도 짜장면을 먹을 때면 우리도 모르게 어릴 적 행복했던 향수가 떠오르는 것 아닐까.
그런데 왜인지 지금의 짜장면은 그 시절보다 맛이 없게 느껴진다. 이제는 흔하게 먹을 수 있어서일까. 아니면 단순한 추억의 미화일까. 그러나, 많은 이가 짜장면이 맛이 없어졌다는 데 동의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정말 짜장면은 맛이 없어진 것일지 모른다.
짜장면의 추억. 과거 사진. 온라인커뮤니티 |
‘철가방 셰프’로 유명한 임태훈 셰프도 짜장면이 맛이 없어졌다는 데 동의한다. 그가 짜장면이 맛 없어졌다고 하는 근거는 재료에 있다. 가장 중요한 향과 고소한 맛을 내는 돼지기름 ‘라드유’가 사라진 게 가장 큰 문제라고 꼽았다.
“짜장면이 맛 없어졌다는 데 저도 동의해요. 재료 때문에 그래요. 과거에는 짜장면에 양배추며 호박이며 다양한 재료로 맛을 냈어요. 지금은 양파만 넣는 곳도 있거든요. 재료의 차이가 커요. 가장 중요한 라드를 사용해야 하는데, 라드를 쓰는 곳이 사라졌어요.”
돼지기름이 몸에 좋지 않다는 왜곡된 정보가 미디어 등을 통해 일파만파 퍼지면서, 소비자들은 라드유에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 사실이 아니었다. 적당량의 라드유는 콜레스테롤 개선과 염증 완화, 심혈관 질환 감소, 당뇨병 예방 등 효능이 있다는 게 증명됐다. BBC에서는 8대 슈퍼푸드에 라드유를 선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번 박힌 편견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더욱이 요식업계는 비싼 라드유로 회귀를 택하지 않았다.
과거 스타일의 탕수육. 온라인커뮤니티 |
짜장면과 함게 맛이 변한 게 탕수육이다. 과거 탕수육은 바삭한 튀김 위에 채소가 가득한 달콤한 소스를 끼얹어 먹는 방식이었다. 소스와 소스가 따로 나오는 ‘찍먹’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소스를 듬뿍 끼얹어 먹다 보니 소스의 맛이 굉장히 중요했다. 어느샌가 떡과 같은 쫄깃한 식감의 탕수육이 대중화되고, 소스를 따로 먹는 게 보편화되면서 탕수육은 아예 다른 음식이라고 할 만큼 달라졌다.
“과거에는 고구마 전분을 많이 썼어요. 튀겼을 때 바삭한 식감이 뛰어났고, 고소한 맛이 났어요. 지금 대중화된 찹쌀 탕수육은 사실 찹쌀이 들어가지 않고 감자 전분을 써요. 고구마 전분 가격이 급등하고 감자 전분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자 업계가 판을 바꿨어요. 경제 논리가 반영된 거죠. 찍어 먹는 문화가 생기면서 소스맛도 완전히 바뀌었어요. 과거에는 채수(菜水)를 기본 베이스로 다양한 재료가 들어갔지만, 현재는 설탕과 기름, 녹말이 들어간 설탕물과 다름없어요.”
은은한 맛을 내는 임태훈의 짜장면의 ‘맛의 비결’
도량의 짜장면. 임태훈 셰프 |
임태훈 셰프에게 짜장면은 오래된 연인과 같다. 중학교 시절, 그는 철가방을 메고 동네를 누비며 짜장면을 배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짜장면은 그의 인생을 채운 한 그릇이었다. 그의 식당 ‘도량’ 역시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메인으로 하는 한국식 중식당이니, 3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해온 셈이다.
임태훈 셰프의 짜장면은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하다. 이는 짜장면뿐 아니라 도량의 모든 요리에도 적용되는 그만의 미식 포인트다. 중식은 으레 짜고, 기름진 자극적인 맛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맛은 첫입에 ‘맛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쉽게 물리고 다 먹은 후 더부룩함이 있다. 임태훈 셰프의 짜장면은 첫 입의 감동은 덜할 수 있지만 은은하게 다가오는 감칠맛이 짜장면을 다 먹은 후 ‘참 맛있었다’는 여운을 남긴다.
“은은함, 깔끔함을 맛의 포인트로 살리고 있어요. 중요한건 기름이에요, 좋은 기름을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향이 완전히 달라지고 맛의 여운을 줄 수 있어요. 저만의 기름 양의 기준이 있어요. 남들보다는 조금 덜 쓰면서 맛의 여운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그 정도 양을 찾아 사용하고 있어요.”
요리하는 임태훈 셰프. 임태훈 셰프 유튜브 |
임태훈 셰프 요리의 맛을 좌우하는 기름, 양뿐 아니라 질도 중요하다. 정성을 들여 만든 기름을 베이스로 만든 요리는 향과 감칠맛에서 완전한 차이를 낸다고 한다.
“중식당의 요리들이 맛이 비슷한 이유가 기름 때문이에요. 시중에 파는 고추기름을 넣고 만들다 보니 향의 차이가 없어요. 향미유를 만들 때는 은은한 불로 오랜 시간 향을 기름에 넣어야 해요. 예컨대, 저는 생강과 파를 넣어 먼저 파기름을 내고 그 파기름에 굵은 고추가루를 넣어 고추기름을 만들어요. 평균적으로 향미유를 만드는데만 40분 정도 시간이 걸려요.”
임태훈 셰프의 요리들. 도량 |
임태훈 셰프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동파육이라고 한다.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유명세를 타다 보니 찾는 이도 많아졌고, 그만큼 많이 만들어 이제 동파육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만큼 자신이 생겼다고 한다. 임태훈 셰프만의 동파육 비결 역시 적절한 간과 향에 있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아주시고, 많이 했던 요리가 동파육이라 그만큼 자신있어요. 제 동파육의 특징이라면, 다른 곳보다 간을 낮추고 팔각향을 줄여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는 데 있어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맛있다고 느낄 수 있는 동파육을 만들고 싶었어요.”
임태훈 셰프는 스스로를 ‘우물 안 개구리’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우물 밖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중식을 넘어서 다양한 장르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한식, 양식을 가리지 않고요. 요즘은 한국식 중식을 넘어 전통 중식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예컨대 마라탕도 너무 자극적인 것이 아닌 제 나름의 대중화된 마라를 선보이고 싶어요.”
할머니의 시래기찌개
임태훈 셰프와 할머니 문점희(90) 씨. 임태훈 셰프 |
임태훈 셰프에게 할머니의 또 다른 이름은 엄마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엄마. 그리고 그를 끔찍히 사랑해주시던 엄마.
1993년 새해가 얼마 지나지 않은 추운 겨울, 그는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할머니는 가난했다. 국민학생이던 임태훈 셰프는 고사리같은 손으로 색종이를 봉투에 넣는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하나에 5원, 하루에 250원을 벌어 준비물도 사고 간식도 사먹었다. 가난에 힘들었던 나날, 학교에서 마주친 할머니 모습을 그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학생들이 먹고 버린 우유팩을 수돗가에서 씻어 커다란 자루에 담고 계셨어요. 온 몸에 먹다 남은 우유를 뒤집어 쓰고, 우유팩을 모으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는 친구들이 할머니를 보는 그 눈빛이 싫었어요. 너무 창피했거든요. 학교에서 수돗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후에는, 자루에 담아 집까지 가지고 오셨는데 여름이면 우유 썩은내가 집안에 진동했어요. 학교에 갔다온 후에는 할머니랑 우유팩을 씻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 우유팩을 팔아 생활을 했어요.”
신문배달을 해 받은 월급 10만원을 할머니께 드리던 효심 깊은 임태훈 셰프였다. 중학교 2학년 때는 교육청에서 효행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중학교 졸업 후에는 학업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길을 택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집에서 배달일을 하며 요리사의 길을 걸었다.
임태훈 셰프는 어릴 적부터 요리 하는 걸 좋아했다. 할머니가 없을 때면, 집에서 부침개며 국이며 뚝딱 만들어 먹곤했다. 부엌에 들락거리는 그를 보고 할머니는 “너는 여자로 태어났어야 했는데”라며 핀잔 아닌 핀잔을 하기도 했다.
2000년 신문에 실린 임태훈 셰프(중간)와 할머니(왼쪽) 그리고 임태훈 셰프가 찾고 싶어 하는 천주교 대부 박상호 씨. 채상우 기자 |
할머니의 시래기찌개는 임태훈 셰프가 가장 싫어하면서, 동시에 가장 그리운 음식이다.
“완전히 푹 쉬어버린 총각무와 멸치, 시래기를 넣고 끓인 찌개같은 것을 해주시곤 하셨어요. 어린 시절 정말 많이 먹었는데, 맛있다고 하기 힘든 그런 음식이었죠. 그래도 가장 사랑한 음식, 그리운 음식이 뭐냐고 하면 할머니의 시래기찌개에요.”
할머니의 시래기찌개는 어쩌면 과거에만 존재할 지 모른다. 어느날 할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지옥에서 온 악마는 할머니의 기억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시래기찌개의 추억도 같이. 그렇지만, 할머니가 지금까지도 꾿꾿히 지키고 있는 기억이 있다. 임태훈 셰프의 어린 시절이다. 어린 임태훈 셰프를 품에 끌어안고 웅크린 채 치매와 싸우는 듯, 할머니는 지금도 어렸을 적 임태훈 셰프만은 또렷히 기억하고 있다.
“많은 걸 잊으셨지만, 저만큼은 기억하세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 어릴적 추억도 꺼내세요. 할머니에게 실망도 많이 드렸는데. 제 가게를 차렸을 때 할머니가 정말 기뻐하셨어요. 그리고 제 짜장면도 정말 좋아하세요. 지금 하고픈 말은 ‘할머니 건강하세요.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해요’라는 말이에요.”
인터뷰를 하며 느낀 임태훈 셰프는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강한 사람이었다. 슬픔에 빠지지 않고, 밝은 미래를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그에게 더 가치있는 내일이 있기를 바란다.
“늘 즐겁고 재미있게 긍정적으로 살다보면, 늘 행복한 일이 생길거라고 믿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