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보유' 현실 인정하며 대화 손짓
북한은 외무상 방러 발표로 에둘러 거부
2019년 회동 제안 32시간 만 성사 전례
트럼프 방한까지 양측 줄다리기 벌일 듯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은 일종의 핵보유국"이라며 오는 29일 방한을 계기로 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비핵화 포기'를 미국과의 대화 선결조건으로 내세운 북한에 호응하는 듯한 발언으로 김 위원장에게 공을 넘긴 모습이다. 이에 북한은 최선희 외무상의 러시아·벨라루스 방문 계획을 발표하는 등 북미 정상회담 여부를 두고 양측이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24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순방길에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원)에서 취재진을 만나 '한국에 머무는 동안 김 위원장과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가 연락해 온다면 그럴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들(북한)은 핵무기를 많이 갖고 있지만 전화 서비스는 거의 없다"며 "인터넷 말고는 (연락할) 방법이 거의 없다"고 부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만나고 싶어 한다면 나는 열려 있다"며 "그는 내가 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100% 열려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오는 29일부터 1박 2일간 한국을 찾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제시한 북미 대화 선결조건에 한발짝 다가서는 듯한 발언도 했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하려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에 열려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들이 일종의 핵보유국(sort of nuclear power)이라 생각한다"라고 답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들이 핵무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외무상 방러 발표로 에둘러 거부
2019년 회동 제안 32시간 만 성사 전례
트럼프 방한까지 양측 줄다리기 벌일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났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으로,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은 일종의 핵보유국"이라며 오는 29일 방한을 계기로 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비핵화 포기'를 미국과의 대화 선결조건으로 내세운 북한에 호응하는 듯한 발언으로 김 위원장에게 공을 넘긴 모습이다. 이에 북한은 최선희 외무상의 러시아·벨라루스 방문 계획을 발표하는 등 북미 정상회담 여부를 두고 양측이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24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순방길에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원)에서 취재진을 만나 '한국에 머무는 동안 김 위원장과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가 연락해 온다면 그럴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들(북한)은 핵무기를 많이 갖고 있지만 전화 서비스는 거의 없다"며 "인터넷 말고는 (연락할) 방법이 거의 없다"고 부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만나고 싶어 한다면 나는 열려 있다"며 "그는 내가 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100% 열려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오는 29일부터 1박 2일간 한국을 찾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제시한 북미 대화 선결조건에 한발짝 다가서는 듯한 발언도 했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하려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에 열려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들이 일종의 핵보유국(sort of nuclear power)이라 생각한다"라고 답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들이 핵무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김 위원장이 대화 테이블에 나오도록 유인구를 던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이 주장하는 '핵보유국 지위'와 김 위원장의 '현실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 수용하는 듯한 의미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미국이 비핵화 집념을 버리고 현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칭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과 3월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아래 합법적 핵보유국(현재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으로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현실은 인정하되, 핵보유국 지위는 인정하지는 않겠다는 속내를 함께 내비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요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ASEAN)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AP 연합뉴스 |
북한은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은 채 최 외무상의 러시아·벨라루스 방문 계획을 발표했다. 북한은 구체적인 일정과 의제 등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러시아는 최 외무상의 방러 일정이 26~28일이라고 밝혔다. 이에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회동 제안을 우회적으로 거절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 외무상은 2018, 2019년 세 차례 북미 정상회담에서 핵심 수행원으로서 참여한 바 있다. 이에 북미 정상 간 회동이 성사되더라도 최 외무상이 자리를 비울 경우 협상이 구체적으로 이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최 외무상의 방러 역시 북미 접촉에 앞서 혈맹과의 긴밀한 소통 차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멀어진 북미 정상회담…깜짝 '친교 회동'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동 의지를 밝혔다. 26일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에서 차량이 이동하고 있다. 파주=연합뉴스 |
그러나 정상 간 친교를 강조해 온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동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의 판문각 북측 지역 미화 작업은 이번 주말에도 진행됐다. 평시보다 많은 인원이 투입됐고, 잔디 깎기 등 이례적 조경 작업에 공을 쏟는 정황을 일상적 행위로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최 외무상이 (북한에) 꼭 남아 있어야만 북미 정상 간 만남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어떠한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차담회 정도의 가능성은 이전보다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외교 라인이 작동하지 않더라도 미국은 북한에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형'에 대한 시험발사 준비 중단을, 북한은 미국에 한미연합연습 중단을 요청하는 등 정상 간 담판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고 있는데 북한이 호응하지 않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김 위원장도 안다"며 "한국과 미국이 대화를 구걸해 응해준다는 이른바 '백기론'을 들고 대화에 나선 뒤 일종의 정치적 승리를 선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2019년 6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현 X)를 통해 김 위원장에게 회동을 제안했고, 그로부터 32시간 만에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전례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머물 때까지 양측 정상의 결단만 이뤄진다면 대화 테이블이 펼쳐지는 데는 별다른 무리가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판문점이 아니더라도 김 위원장이 원하는 제2의 장소에서 깜짝 회동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