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한국일보 언론사 이미지

베를린 무대에 다시 선 바렌보임, 음악의 힘 믿은 지휘자

한국일보
원문보기
[이지영의 클래식 노트]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지난 10월 초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홀 무대에 선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Monika Rittershaus

지난 10월 초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홀 무대에 선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Monika Rittershaus


유럽을 찾을 때면 우디 앨런 감독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주인공처럼 마차를 타고 시대 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한다.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았던 오스트리아 빈의 슈테판 성당, 클림트가 베토벤을 기리며 그린 '베토벤 프리즈'가 있는 제체시온 전시관,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를 위해 세운 독일 바이로이트 극장 등에 서면 예술가들의 시간과 그들의 이상이 겹쳐 보인다.

눈에 띄는 건축물은 아니지만 피에르 불레즈 홀(Pierre Boulez Saal)은 문화의 도시인 독일 베를린에서도 매우 특별한 공간이다.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문화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함께 세운 바렌보임-사이드 아카데미가 이 홀의 주인이다.

사이드는 정치, 역사, 문화가 갖는 괴리감 사이에서 유사점을 찾아내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문화 전반을 풍윤하게 만들어 온 20세기 대표 지성이다. 바렌보임과 사이드는 이 시대가 음악을 지적 성장의 필수적인 요소로 생각하지 않게 되는 현실과, 그로 인해 음악의 협소한 분야에 대해서만 깊이 파고드는 전문가들의 세상이 된 것에 불편함을 가졌다. 이에 음악 교육부터 바로 세우기 위해 2002년 이 아카데미를 세웠다.

피에르 불레즈 홀에 깃든 바렌보임의 이상



독일 베를린의 바렌보임-사이드 아카데미. 필자 제공

독일 베를린의 바렌보임-사이드 아카데미. 필자 제공


이는 바렌보임이 중동 지역 젊은 음악가들을 구성해 만든 서동 시집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 활동과도 연결된다. 악단은 이상과 열정,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분명한 행동이 따를 때 심지어 전쟁 중에도 변화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제2차 레바논 전쟁 중에서도 다툼 없이 연주 활동을 이어 갔고, 2007년에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상주 오케스트라로 선정돼 음악사에서 가장 복잡한 작품 중 하나인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관현악을 위한 변주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바렌보임-사이드 아카데미의 본거지는 원래 스위스에 세우려 했으나 전쟁과 대립을 허문 상징적인 도시 베를린에서 시작하게 된다. 처음엔 바렌보임이 30년간 음악감독으로 일한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창고를 개조해 체임버홀과 21개의 리허설룸, 도서관을 만들려고 했는데 건축가 프랑크 게리가 설계를 기부하면서 극장들이 몰려 있는 베를린 중심가에 별도 건물로 세워졌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건축가로 잘 알려진 게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도 설계했다. 여기에 세계적 음향 전문가 도요타 야수히사가 가세했다. 관객이 무대를 둥글게 둘러싸는 구조의 홀은 세련된 디자인과 컬러, 놀랄 만큼 훌륭한 음향과 자유로운 구조를 갖고 있어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게 설계됐다.

독일 베를린의 피에르 불레즈 홀 내부. 필자 제공

독일 베를린의 피에르 불레즈 홀 내부. 필자 제공


시대의 경계와 틀로부터 벗어나려는 바렌보임-사이드 아카데미의 노력은 바렌보임과 50년 이상 깊은 우정을 이어 온 지휘자이자 20세기 최고의 작곡가로 꼽히는 피에르 불레즈로 이어진다. 2003년 사이드가 세상을 떠난 후 불레즈와 함께 많은 고민을 공유해 왔던 바렌보임은, 2016년 불레즈가 세상을 떠나자 홀 이름을 '피에르 불레즈 홀'로 명명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애정이 이 아카데미와 홀의 후원과 기부로 이어지는데 피아노 제조사 스타인웨이도 가세했다. 스타인웨이는 손이 작은 바렌보임을 위해 건반 사이 공간을 좁혀 만든 맞춤형 피아노를 기증했다. 바렌보임은 가장 가까운 친구인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에게 이 특별한 선물을 보여줬다. 기존 피아노 건반에 맞춰 80년 가까이 연주 활동을 해 왔던 두 사람은 "이 피아노로 연주할 수 없지만, 가장 소중한 피아노"라고 했다고 한다.


바렌보임은, 지난 2월 성명을 통해 파킨슨병 진단 사실을 공개했다. 2022년부터 신경계통 질환 악화로 활동을 중단한 적이 있는데, 지난 10월 첫 주 베를린 필하모닉홀에서 어쩌면 생애 마지막 연주가 될지 모르는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과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지휘했다. 바렌보임의 음악 인생에서 큰 애정을 보였던 두 작품은 세르주 첼리비다케(1912~1996)를 떠올릴 만큼 느린 템포와 불편해 보이는 입퇴장 때문에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알레그레토의 장엄하면서도 멜랑콜리한 행진은 무겁게, 뚜벅뚜벅 걸어온 그의 인생이 보이면서 큰 감동이 있었다. 느린 리듬 속에서도, 그의 음악은 여전히 세상을 향해 뛰고 있었다.

객원기자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광주 전남 행정통합
    광주 전남 행정통합
  2. 2은애하는 도적님아
    은애하는 도적님아
  3. 3김민석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김민석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4. 4트럼프 네타냐후 회담
    트럼프 네타냐후 회담
  5. 5통일교 쪼개기 후원
    통일교 쪼개기 후원

한국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