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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311] 맨해튼의 비계(飛階)

조선일보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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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건물의 비계들. 비계가 설치되면 건물의 외관이 흉해지고 간판도 잘 보이지 않아 거기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은 죽을 맛이다. 도시 경관을 망치는 주범이기도 하다.

맨해튼 건물의 비계들. 비계가 설치되면 건물의 외관이 흉해지고 간판도 잘 보이지 않아 거기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은 죽을 맛이다. 도시 경관을 망치는 주범이기도 하다.


건설 현장에서 작업 보조나 시설물 유지 관리를 위해 설치하는 구조물을 비계, 영어로 스캐폴딩(scaffolding)이라고 한다. 어느 도시에나 있지만 맨해튼에 유독 많다. 거의 건물 두 채당 한 채꼴로 설치돼 있다. 미국 뉴욕을 찾는 방문객들은 의아할지 모른다. 저렇게 많은 건물이 모두 공사 또는 보수 중인가?

뉴욕에 1885년 ‘비계 법(Scaffolding Law)’이 제정됐다. 건물 공사·철거·수리 중에 자재 등이 떨어질 수 있고 작업자나 행인 안전과 직결되니 비계를 의무화했다. 자격을 갖추고 허가받은 업체만 설치할 수 있고, 이용하는 작업자들도 안전 교육을 받는다. 임시 구조물이니 공사나 보수가 끝나면 철거해야 한다. 문제는 비계 설치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점이다. 들여다보면 법적인 함정이 숨어있다. 뉴욕 건축법에서 외장재가 낡거나 훼손되는 등 하자가 생기면 시일 내에 보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벌금이 부과된다.

맨해튼 루이뷔통 스토어는 수리 기간 건물을 통째로 포장하는 환경 예술을 선보였다. 디자인이 거의 천편일률적인 맨해튼의 비계들과는 다른 신선한 퍼포먼스다.

맨해튼 루이뷔통 스토어는 수리 기간 건물을 통째로 포장하는 환경 예술을 선보였다. 디자인이 거의 천편일률적인 맨해튼의 비계들과는 다른 신선한 퍼포먼스다.


문제는 공사업체들이 그렇게 빨리 섭외되지 않고, 서둘러 공사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피할 방법이 비계다. 일단 건물에 비계가 설치되면 최소한 수리·보수 중인 것으로 인정돼 벌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또 비계 치수 등을 규정한 기준은 있지만 미적인 기준은 없다. 그래서 디자인은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맨해튼 루이뷔통 스토어 같은 명품 하우스는 이를 참지 못해 수리 기간 동안 아예 건물을 통째로 포장하는 퍼포먼스성 환경 예술을 선보인다.

현재 뉴욕시에 있는 비계 약 8400개 중 대부분은 맨해튼에 있다. 평균 500일 동안 설치되고, 그중 300개 이상은 설치된 지 무려 5년이 넘었다. 도시 경관을 망치는 주범 중 하나다. 비계가 설치되면 외관도 흉하고 간판도 잘 보이지 않아 건물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죽을 맛이다. 마침내 뉴욕시 의회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지난 3월 회의에서 도심 경관을 위한 비계 문제 개선 방안을 진지하게 의논했다. 부디 깔끔한 실행으로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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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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