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지난 6월 개봉한 대만의 다큐멘터리 영화 '반도체 오딧세이(A Chip Odyssey)의 한 장면. 1976년도 대만 정부 프로젝트로 반도체 기술 습득을 위해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던 20대 젊은 엔지니어들의 단체 사진이다. 이들이 대만으로 돌아와 현재 대만의 주력 산업이 된 반도체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고, 영화는 이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기획됐다./반도체 오딧세이 페이스북 |
“우리의 선택지에 ‘실패’는 없다.”
지난 6월 대만에서 개봉한 반도체 다큐멘터리 영화 ‘반도체 오디세이(A Chip Odyssey)’에 반복해서 나오는 멘트다. 대만 정부가 1976년 최초의 ‘반도체 연수생’ 19명을 선발해 미국으로 파견할 때 쑨윈쉬안 당시 경제부장(장관 격)이 그들에게 전한 말이다. 1970년대 대만은 중국의 부상으로 유엔에서 축출되고 미국 등과 단교하며 국제 사회에서 존립 위기를 겪고 있었다. 생존을 위한 돌파구로 젊은 엔지니어들에게 국가의 미래를 맡기며, 첨단 산업 유치에 전력을 다하던 시절의 비장함이 이 문장에 담겨 있다.
관련 산업 기반이 전무했던 대만은 50년 만에 세계 제1의 반도체 생산국으로 우뚝 섰다. 신화와 같은 이들의 성공 요인은 이제 어느 정도 정설이 됐다. 절박한 정부의 전폭적인 투자, 파운드리(위탁 생산)라는 신사업 모델을 대만에 이식한 장중머우 TSMC 창업자의 비전과 리더십, 살인적인 업무량 속에 공장을 24시간 풀가동한 근로자들의 희생 등이 대표적인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뻔한 줄거리를 단순 반복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샤오추첸 감독은 대만 정부의 반도체 초창기 프로젝트에 관여한 80여 명을 직접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냈다. 당시 20대 청년이던 연수생들은 백발의 노인이 된 지금도 ‘실패는 있을 수 없다’던 그때의 중압감을 회상하며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샤오 감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만 했던 당시 정부 관료들과 1세대 엔지니어들의 노고와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후대에 꼭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근에 대만 외교부 초청으로 샤오 감독과 이 영화의 총괄 프로듀서 장샨빈을 만났다. 장 프로듀서는 기자에게 “이전에 만나본 한국 관람객들이 내게 ‘한국의 산업 발전사와 너무 비슷해 감동받았다’고 말했는데, 한국에는 이런 다큐멘터리 영화가 없나요?”라고 물었다. 20년 전 방영된 드라마 ‘영웅시대’ 외에는 한국의 주력 산업이나 기업가를 다룬 창작물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기적적인 산업 발전에 대한 기록, 그 기틀을 놓은 선대에 대한 칭송이 한국 대중 매체에서는 사실상 사라진 현실이 새삼 안타깝게 느껴졌다.
우리 앞 세대는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적이 없던 ‘기업가 정신’을 새롭게 주입했건만, 최근 10여 년 동안 그 흐름이 쇠퇴를 넘어 조선 시대의 사농공상(士農工商) 수준으로 퇴행하는 현실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길게 다 설명하기엔 시간이 부족해 “한국에는 반(反)기업 정서가 강해서 이런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고 씁쓸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실패는 없다’는 신념으로 황무지를 일군 그들처럼 우리도 미래를 위해 절박한 물음을 던져야 할 때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5분 칼럼' 더보기
[타이베이=류재민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