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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원의 말글 탐험] [259] 덮개와 캐노피

조선일보 양해원 글지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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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이 육교 하나를 다 가렸다. ‘2025 푸드 위크 코리아.’ 우리나라 음식 박람회 같은 걸 하나? 어렴풋이 짐작하기보다 훨씬 큰 행사인 듯했다. 현수막 한구석에 ‘제20회 서울국제식품산업전’이라 적은 걸 보니.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는 말은 귀퉁이에 처박고 왜 영어를 대문짝만 하게 내세울까.

서울 한복판으로 들어오니 커다란 전광판에서 ‘FOOD WEEK KOREA’가 번쩍거린다. 외국인이 몰라보게 늘어난 국제도시니만큼 영문 홍보가 타당한 점도 있지만, 한글은 덧붙이지도 않아 육교 현수막보다 심하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으면 볼 생각도 알 생각도 말라는 뜻인가. 당장 내국인 차별이요, 언젠가 쓰라린 대가를 치를 언어 사대(事大)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전광판이 올려다보이는 지하도 입구 현수막만 해도 그렇다. ‘광화문 지하보도 캐노피 설치 공사—보행자 안전 및 편의 향상을 위한 (…) 공사로 인한 통행 불편에 대해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어쩔 수 없는 불편이야 양해할 수 있건만, ‘캐노피’라 적어놓은 행태를 양해하기 어렵다. 뜻을 모르니 뭘 하는지도 몰라 이래저래 불편한 마음이 더할 뿐.

사전에 이렇게 나온다. ‘canopy: 덮개. 지붕. 항공기 조종석의 투명 덮개.’ 그렇다면 덮개나 지붕이라 하면 되는데. 영어 공부 지지리 안 해서 모르는 축이야 그렇다 쳐도, 이곳 지나간 사람 중 얼마나 알지 궁금하다. 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우리말 천대(賤待)인가.

‘FOOD WEEK KOREA’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미래의 식품 산업을 선보이는 국내 최대 규모 국제 종합 식품 전시회’란다. 큼직한 공간에 지난해 규모를 올렸다. ‘2024 Show Result/ Exhibitors 1,054/ Booths 1,846/ Countries 37/ Visitors 63,150.’ 분명 한국어 홈페이지인데 우리말로 ‘참가사, 전시 공간, 참가국, 방문객’이라고 덧붙이지도 않았다. 알 수 없는 일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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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원 글지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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