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비 찰턴 |
1958년 2월 6일 독일 뮌헨에서 막 이륙하던 영국 유러피안항공 609편 항공기가 활주로에서 18㎞ 떨어진 곳에 추락했다. 비행기에는 영국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선수단과 스태프·기자 등 44명이 타고 있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린 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 준준결승전에서 비겼지만 골 득실에서 앞서 준결승 진출을 확정하고 전세기 편으로 귀국하는 길이었다. 이 사고로 맨유 주전 8명, 스태프 3명, 승무원 4명, 기자 8명 모두 23명이 사망했다.
잉글랜드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을 한꺼번에 잃은 이 사고로 유럽 클럽 축구의 중심이 영국 FA 리그에서 독일 분데스리가로 넘어갔다. 영국은 축구 종가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1992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새로 발족했다. 외국 스타들에게 대폭 문호를 열어 스타 선수를 영입하며 유럽 최고 리그의 명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보비 찰턴 인터뷰. 2010년 9월 1일자. |
당시 비행기 사고에서 살아남은 선수 중에는 21세 보비 찰턴(1937~2023)이 있었다. 그는 사고 2개월 후 잉글랜드 대표팀에 선발돼 데뷔전 골을 넣었다.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196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전에서 독일을 꺾고 우승하면서 ‘국민 영웅’이 되었다. 3차례 월드컵에 출전해 14경기 4골을 포함, 대표팀에서 106경기를 뛰며 49골을 기록했다.
클럽에선 맨유 소속으로 리그 우승 3차례, 758경기 249골을 기록했다. 1968년 맨유의 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찰턴은 웨인 루니에게 추월당하기 전까지 40년 이상 맨유(249골)와 잉글랜드(49골)에서 최다 득점자 자리에 있었다. 월드컵과 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 리그) 우승, 발롱도르 수상을 모두 달성한 9명 선수 중 한 명이다. 경기 매너가 좋아 선수 시절 단 한 번도 퇴장당하지 않았다. 1994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보비 찰턴(왼쪽)과 베켄바우어. 1966년 월드컵 결승 잉글랜드-독일 전에서 맞붙었다. 잉글랜드가 4대2로 이겼다. |
선수 은퇴 후에는 프로팀 감독과 축구 행정으로 잉글랜드 축구에 기여했다. 2010년 9월 방한해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뮌헨 참사 후 많은 팬이 동정과 관심을 보였다. 슬픔을 이겨내면서 우리는 더 널리 알려지게 됐다”면서 “팬들은 알뜰하게 돈을 모아 축구장에 온다. 그들에게 지루한 경기를 보여줘선 안 된다. 이건 맨유의 철칙이다”(2010년 9월 1일 자 A28면)라고 했다.
찰턴은 앞서 1999년 12월에도 한국을 찾았다. 2006년 월드컵 잉글랜드 유치 홍보를 위해 내한했다. 경쟁 상대는 독일이었다. 당시 독일 축구의 전설 베켄바우어도 같은 날 서울에 도착했다. 찰턴과 베켄바우어는 각각 잉글랜드와 독일의 월드컵 유치 단장을 맡고 있었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자 FIFA 부회장은 월드컵 개최지를 결정하는 24인 투표인단의 일원이었다. 세 사람은 경기도 용인 골프장에서 함께 라운딩을 했다.(1999년 12월 4일 자 19면)
보비 찰턴과 베켄바우어. 1999년 12월 4일자 19면. |
2006년 잉글랜드 월드컵 유치는 성공하지 못했다. 독일이 개최권을 따냈다. 찰턴은 베켄바우어와 1966년 월드컵 결승에서 선수로 맞붙었다. 당시 경기는 잉글랜드가 독일에 4대2로 승리했다. 찰턴을 전담 수비했던 베켄바우어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 40년 만에 맞붙은 월드컵 유치전에선 찰턴이 베켄바우어에게 진 셈이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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