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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봤자 처벌받을 것”… ‘범죄의 맛’에 빠진 그들은 귀국 꺼렸다

조선일보 프놈펜=이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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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현장은 지금]
범죄 조직에 적응한 2030 청년들
캄보디아 온라인 사기에 가담해 구금된 한국인들이 17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이민청에서 한국 송환 전세기 탑승을 위해 테초국제공항으로 이동하는 버스에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캄보디아 온라인 사기에 가담해 구금된 한국인들이 17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이민청에서 한국 송환 전세기 탑승을 위해 테초국제공항으로 이동하는 버스에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인 태자단지 내부에 옷가지 등 생활흔적이 남아있다. / 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인 태자단지 내부에 옷가지 등 생활흔적이 남아있다. / 연합뉴스


“캄보디아 콜센터에서 한 달만 일하면 몇 달 치 월급을 벌 수 있어.”

20대 안모씨는 친구 말만 믿고 지난 5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을 찾았다. 공항에서 승합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도심 한복판에 있는 28층 건물이었다. 수십 팀으로 나뉜 조직원 수백 명이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 주식 투자 열풍을 악용한 ‘불법 투자 리딩방’ 사기, 사랑인 척 위장한 사기 행각을 뜻하는 로맨스 스캠을 벌이고 있었다.

박성원 기자지난 15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한국인 B(30)씨가 본지 이기우(오른쪽) 기자와 대화하고 있다. B씨는 2년 전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조직에 잡혀 한동안 범죄 단지에 감금당했었다.

박성원 기자지난 15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한국인 B(30)씨가 본지 이기우(오른쪽) 기자와 대화하고 있다. B씨는 2년 전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조직에 잡혀 한동안 범죄 단지에 감금당했었다.


안씨는 이곳에 감금돼 보이스피싱과 불법 투자 리딩방 사기 팀을 번갈아 가며 일했다. 하루는 한국의 피해자들에게 가짜 주식 정보 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했고, 다음 날엔 보이스피싱 전화를 돌렸다. 주저하거나 성과가 적으면 조직원들에게 두들겨 맞기 일쑤였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돈을 뜯어내면서도, 동시에 조직원들에게 감금·폭행을 당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지난 8월 안씨는 한국 경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다. 같은 건물에 감금돼 사기를 벌이던 동료가 귀국했다가 경찰에 체포돼 안씨 이름을 언급한 것이다. 안씨는 인터폴의 ‘적색 수배’(해외 도피 피의자의 인터폴 수배 유형 중 가장 높은 단계) 대상에도 올랐다. 겨우 조직을 빠져나와 한국으로 귀국한 그는 경찰에 구속돼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안씨는 변호인을 통해 최근 본지에 “처음에는 조직에서 도망치려 했지만 성과를 인정받고 수백만 원의 인센티브까지 받자 나도 모르게 조직의 일원이 됐다”고 했다.

15일 오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위치한 대규모 범죄 소굴인 원구단지 모습. /박성원 기자

15일 오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위치한 대규모 범죄 소굴인 원구단지 모습. /박성원 기자


16일 캄보디아 타케오주 범죄단지인 태자단지 내부 모습.  스캠사기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랜선들이 널려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16일 캄보디아 타케오주 범죄단지인 태자단지 내부 모습. 스캠사기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랜선들이 널려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한국 정부와 캄보디아 경찰 등에 따르면 안씨처럼 캄보디아에서 온라인 사기 범죄에 가담한 혐의로 현지에서 검거돼 갇혀 있는 한국인은 17일 기준 60여 명이다. 캄보디아 경찰이 이들 전원을 현지 시각으로 18일 오전 2시 한국으로 돌려보낼 예정이라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이들을 호송할 대한항공 전세기는 17일 오후 7시 20분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했다.

캄보디아 당국은 “구금된 60여 명 중 상당수가 한국행을 거부했다”고 했다. 범죄인 줄 알면서도 현지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하는 한국 청년이 적잖다는 것이다.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캄보디아 경찰 단속에 적발되고도 돈을 벌겠다며 계속 캄보디아에 남겠다고 하는 20·30대가 적잖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 처벌받는 걸 두려워하거나, 범죄 수익을 많이 거둬 현지 조직에서 인정을 받은 이들이다.


지난 16일 캄보디아 당국 관계자들이 타케오주의 범죄 단지인 ‘태자 단지’ 입구에 ‘출입 통제 안내문’으로 보이는 공문을 붙이고 있다. 김진아 외교부 2차관 등 정부합동대응팀이 찾았던 곳이다./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6일 캄보디아 당국 관계자들이 타케오주의 범죄 단지인 ‘태자 단지’ 입구에 ‘출입 통제 안내문’으로 보이는 공문을 붙이고 있다. 김진아 외교부 2차관 등 정부합동대응팀이 찾았던 곳이다./로이터 연합뉴스


“코인 투자도 가르쳐 주고, 기본급으로 2000달러(약 284만원)를 주겠다는 광고를 보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정모(28)씨는 작년 12월부터 두 달간 캄보디아·태국 국경 지대 포이펫의 범죄 단지에서 범죄에 가담했다. 텔레그램에서 자신을 ‘차 실장’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건전한 고수익 일자리”라고 했지만 로맨스 스캠 범죄에 동원됐다. 이 일을 계속하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그런데 귀국하자마자 경찰에서 소환 통보가 왔다. 그는 결국 지난 6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정씨는 본지에 “살아남으려면 범죄인 줄 알면서도 가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본지가 캄보디아에서 만난 20·30대 청년들은 “범죄 단지에 감금된 한국인 중에서도 ‘등급’이 있다”고 했다. 제대로 일을 못하거나 범죄 단지를 몰래 빠져나가려고 하면 폭행·고문을 당하지만, 조직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범죄에 적응한 MZ세대도 많다는 것이다.

현지 범죄 조직은 성과가 좋은 이들에겐 한 달 2000~3000달러 월급에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고 외출이나 휴대폰 통화도 자유롭게 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작년 5월 캄보디아로 와 4개월간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일한 A(29)씨도 매달 2000달러와 수십만 원의 별도 수당을 받았다. 이 기간 그가 속한 범죄 조직은 피해자를 72명 속여 62억원 이상을 빼돌렸다. 울산지법은 최근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15일 오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외곽에 위치한 대규모 범죄 소굴인 태자단지 모습.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고, 철조망이 두껍게 쳐져 있었다. 2025.10.15 /박성원 기자

15일 오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외곽에 위치한 대규모 범죄 소굴인 태자단지 모습.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고, 철조망이 두껍게 쳐져 있었다. 2025.10.15 /박성원 기자


범죄에 가담하는 수준을 넘어 캄보디아에 근거지를 두고 사기 조직을 운영하는 한국 청년도 있다. 캄보디아 현지 언론 크메르타임스 등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캄보디아 경찰은 한국인 33명 등 범죄 조직원 총 48명을 프놈펜 시내의 한 콘도 건물에서 검거하고 컴퓨터 60대, 여권 35개 등을 압수했다. 한국인 신모(48)·송모(21)·박모(26)씨 3명이 주범으로, 나머지 조직원들에게 사기를 강요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크메르타임스는 “캄보디아에는 중국계 범죄 조직이 대부분인데 한국인이 주범인 사기 작업장이 적발된 것은 드문 일”이라고 했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17일 브리핑에서 “송환자 대부분이 범죄 혐의가 있는 피의자 신분이고 적색 수배자도 있다”며 “(사실상) 모두가 체포영장 대상이다. 법적 절차를 갖춰 호송될 예정”이라고 했다. 이들은 송환 뒤 경찰 수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50대 남성 최모씨가 지난 6월 캄보디아 현지에서 숨진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최씨는 캄보디아 포이펫 지역 범죄 단지의 로맨스 스캠 조직에서 모집책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캄보디아 내 범죄 조직과 연루된 한국인 사망자는 최소 3명으로 늘어났다.

[프놈펜=이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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