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백지 발행된 청소년언론 ‘토끼풀’의 신문 1면. 토끼풀 제공 |
‘은평구 학생 언론 <토끼풀>은 최근 일부 학교의 언론 탄압에 항의해 1면을 백지로 발행합니다.’
서울 은평구 청소년 언론 ‘토끼풀’ 기자이자 편집자인 청소년 32명은 16일 치 신문 1면을, 이 문장과 독자에 대한 사과 글만 적은 ‘백지’로 발행했다. ‘중립성’ 등을 언급하며 기사 검열을 시도하거나, 신문을 압수한 일부 학교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문성호(15·중3) 토끼풀 편집장은 15일 한겨레에 “1면 백지 발행은 권력의 편집권 침해에 맞섰던 언론의 역사를 따른 것”이라고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토끼풀은 서울 은평구 중학생들이 자율적으로 모여 만드는 지역 청소년 언론으로, 중학교 4곳에 다니는 학생 32명이 활동한다. 지난해 4월부터 매달 지면을 발행해 1천부씩 4개 학교에 신문을 배포한다. ‘학교로부터 독립된 언론’을 표방해 지역 시민들 후원과 일부 광고로 운영한다.
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에 성역은 없다. 정치·사회적 이슈와 지역 사회·교육·학교 현안을 두루 다룬다. 최근 은평구 18개 중학교의 학생생활규정을 전수조사해 인권 침해적 교칙에 대한 문제를 짚거나, 10대 자살 문제를 청소년 시각으로 풀어낸 기사 등을 실었다. 특히 지난해 12·3 내란사태가 벌어진 뒤 호외를 발행해 “청소년은 민주주의가 사라진 나라를 물려받고 싶지 않다”는 주장을 전해 주목받기도 했다.
토끼풀 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교들이 학내 문제와 사회적 주제를 청소년 관점으로 전하는 토끼풀 활동 자체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일은 이전부터 적지 않았다고 한다. 문성호 편집장은 “학교장이 기자를 불러 교내 현안을 다룬 기사에 빨간 줄을 치며 내용을 고치라고 하거나, 지역구 국회의원 인터뷰 기사를 쓰니 ‘다른 당 의원도 인터뷰하라’고 딴지를 걸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다 지난 8월28일 백지 발행으로까지 이어진 ‘사건’이 터졌다. 은평구 ㅅ중학교가 학생들이 나눠 주던 300부가량의 신문과 기자 모집 포스터를 압수했다. 이미 1·2학년 부장 교사에게 신문 배포와 포스터 부착을 구두로 허가받았다고 항의했지만, 학교 쪽은 완강했다. 교장을 찾아가니 “제2, 3의 학생 단체가 나타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불온 세력’이 된 셈이다.
ㅅ중학교는 신문 배포를 금지한 이유를 묻는 토끼풀의 정보공개청구에도 “교육의 중립성, 교육활동 침해 여부, 가치관 상이에 따른 학부모 민원 발생 소지 등을 고려해 교내 정식 모집 절차와 결재를 받고 주체가 분명한 동아리 등의 유인물에 한해 배포하도록 조치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학생이 자기주장과 관점을 독립적으로 전하는 활동을 ‘교육 중립성 위반’이나 ‘학부모 민원’ 소지가 있는 것으로만 여긴 것이다. 애초 학생들에게 ‘교칙 위반’을 문제 삼았던 것과 달리 “관련 결정은 학생생활규정이 아닌 부장회의에서 결정했다”고도 밝혔다. 한겨레는 학교 쪽 입장을 직접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회신을 받지 못했다.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는 이날 논평을 내어 “이번 사건은 학생 인권 침해이기에 앞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문 편집장은 “민주주의는 다른 목소리의 표출을 보장하고 토론하는 것이라 배웠다”며 “학생 기자들은 ‘토끼풀’ 활동이 보람 있고 재밌어서 하는 것일 뿐인데, 학교는 무엇이 두려운 것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청소년언론 ‘토끼풀’이 16일 학교 쪽에 항의의 뜻을 담아 쓴 성명. 토끼풀 제공 |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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